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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와 전두환·노태우 구속언론과 권력 (72)
김종철 (언론인)  |  cckim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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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29  07: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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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 정부 3년째인 1995년에도 잇단 대형참사로 사회가 들끓었다. 2월 7일 한진해운 컨테이너 운반선에서 불이 나서 19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되어 목숨을 잃었다. 4월 28일에는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1·2공구에서 도시가스관이 폭발해서 등교하던 학생과 출근하던 시민 101명이 사망하고 117명이 다쳤다. 그리고 공사 현장 부근의 건물 119채가 파손되고 차량 133대가 추락하거나 불에 탔다. 그야말로 ‘지옥’을 연상시키는 ‘인재지변’이었다. 
 
 1993년 7월의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같은 해 10월의 서해페리호 침몰, 1994년 10월의 성수대교 붕괴에 이어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뒤 꼭 두 달 하루만인 1995년 6월 29일 믿을 수 없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부유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고 중요한 첨단기업들이 몰려 있는 서울 강남의 서초동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내린 것이었다. 1989년 12월 1일에 문을 연 그 백화점은 단일 매장 규모로는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에 이어 2위였다. 4,600여 평의 넓은 대지에 지어진 호화로운 건물이 부실한 공사 때문에 붕괴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순식간에 무너지거나 매몰된 지상 5층, 지하 4층 건물 안에서 502명이 숨지고 937명이 다쳤다. 텔레비전은 100시간이 넘게 구조현장을 생중계했다. 
 
 한겨레21 1995년 7월 13일 자 ‘탐욕의 종말 삼풍 대학살!’이라는 기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돈 때문이었다. (···) 삼풍백화점의 역사는 2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동산업계에서는 당시 이 일대가 평당 대략 20만 원에서 30만 원가량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지금은 인근에 지하철 2개 노선이 지나가고 법조단지가 들어서는 바람에 금싸라기 땅으로 변해 평당 2,500만 원을 호가한다. 땅값만으로도 100배를 벌었다.”
 
 ‘문민개혁’을 외치던 김영삼은 집권 이래 그칠 줄 모르고 터지는 대형사고 때문에 ‘운이 없는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사고공화국’ 또는 ‘사과공화국’이라는 자조적인 탄식이 국민 사이에서 들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직후 김영삼이 ‘이 참사는 역대 정권의 무모한 개발과 자본의 탐욕이 빚어낸 불상사이고, 문민정부의 부실한 행정에도 책임이 있으므로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라고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여론이 크게 악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삼풍백화점 붕괴 현장
 
 그러나 김영삼 자신과 정부 고위관리들은 진정성이 보이는 사과를 하지 않았다. 삼풍백화점 참사가 일어난 지 닷새 뒤인 7월 4일 청와대 정무수석 이원종은 KBS, MBC, SBS 사장과 모임을 갖고 삼풍 참사 보도에 대해 불만을 말하면서 대통령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보도 협조’를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한국방송노조건설준비위원회가 발행하는 <방송노보> 7월 14일 자에서 밝혀졌다. 이원종은 ‘삼풍백화점 붕괴를 포함해서 여러 재해에 대해 국민 여론이 부당하게 대통령에 대한 비난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은 언론의 탓’이라고 비판했다. 
 
 “<방송노보>는 ‘이 모임의 결과인지 그 이후부터 각 사의 뉴스에서 삼풍사건을 다루는 데 미담을 위주로 한 연성보도의 양이 급증했으며 5일에는 <뉴스위크>지의 일부 내용을 확대 과장해 대통령 무책임론을 강조하는 일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방송노보>는 또 각 방송사의 보도국 간부들이 ‘YS 옹호 발췌’와 관련하여 ‘사전에 조직 상부와 외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며 ‘3개 방송사가 이미 같은 시기에 확대 보도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사실도 밝혔다.” (<한국현대사산책-1990년대 편 2권>, 222~223쪽)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1995년 8월 1일 김영삼 정부의 총무처장관 서석재가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전직 대통령 가운데 한 사람이 4.000억 원이 들어 있는 가·차명계좌를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 발언으로 정치권이 발칵 뒤집히자 문제의 ‘전직 대통령’으로 지목된 노태우는 ‘이런 해괴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격분한 어조로 주장했다.
 
 10월 19일 민주당 의원 박계동은 노태우 비자금의 관리자, 예치 내용과 형태, 차명계좌를 위해 빌린 이름, 그리고 계좌번호까지 폭로했다. 김영삼은 그 사건을 수사하라고 검찰에 지시했고, 노태우는 10월 27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재임 중 5,000억 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했는데, 그 중 1,700억 원이 남아 있다’고 시인한 그는 ‘속죄의 길이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면서 ‘국민 앞에 무릎 꿇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노태우는 11월 16일 수뢰 혐의로 구속되었다.
 
 11월 24일 민자당 사무총장 강삼재는 ‘5·18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11월 30일 ‘12·12 및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2월 3일 전두환을 구속했다. 김영삼 정부 이전의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쇠창살 안에 갇힌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특히 김영삼과 함께 3당 합당을 함으로써 거대한 보수대연합을 이룬 노태우까지 구속한 것은 ‘김영삼의 놀라운 결단’이라는 평가가 보수언론에 나오기도 했다. 
 
 이 일련의 폭로와 언론의 보도에 관해 김영삼 정부가 정치적 궁지를 벗어나기 위한 ‘여론 조작’이나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칼자루를 잡은 대통령의 위력을 막을 세력은 달리 없었다. 게다가 보수언론이 그의 ‘강공’을 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었다.
 
 12월 6일 민자당은 당무회의를 열고 ‘세계화를 완성하겠다’면서 당 이름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었다. 12월 19일에는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었다.
 1995년에 대형 참사들을 비롯한 전두환·노태우 구속 같은 정치적 사건들이 일어나기까지 대부분의 방송은 역사의 흐름을 바로잡는 보도와 논평보다는 김영삼 정권에 대한 ‘보호성이 짙은 비판’과 ‘동지적 옹호’에 주력했다. 
 
 특히 텔레비전에서는 그해 3월부터 ‘땡김뉴스’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기자협회보> 1995년 3월 2일 자 사설(‘땡김뉴스, 5공으로 회귀하나: 다시 일그러지는 방송의 자화상’)은 이렇게 지적했다.
 
 “2월 초까지만 해도 뉴스 프로그램의 중간이나 뒤에 자리 잡고 있던 김영삼 대통령의 동정기사가 땡김뉴스화하기 시작했던 시기는 민자당 전당대회가 열리던 2월 7일, 전당대회 뉴스를 머리기사로 실으면서 김 대통령의 동정 뉴스는 거의 매일 뉴스 프로그램의 앞머리에 자리를 틀고 앉기 시작했다.”
 
   
▲ 김태동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 1998년 사진
 바로 그 무렵인 2월 말 김태동(성균관대 경제학 교수)은 경실련이 펴내던 <주간 시민의 신문>에 <21세기의 ‘오적’>이라는 시를 연재했다. 그 작품은 시인 김지하가 1970년 5월 월간지 <사상계>에 발표해서 정치·문화적 파란을 일으킨 담시 <오적>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김태동은 21세기의 ‘신오적’ 제1위로 언론을 꼽았다. 
 
 “첫째 도둑 나간다. 이 도둑 모두 무서워하네. 어휴 무서워. 어휴 무서워. 재벌도 무서워하고, 인천 북구청 직원도 무서워하네. (···) 이 도둑은 과거 독재정권이 낳고 기른 사생아. 두드리고 소리 지르는 본분, 두드리지는 않고 침묵하네. 소리 지르려는 놈들, 모두 귀양 갔네. 이것들이 이제는 부자가 되어 도둑 잡는 일은 한사코 반대하지. 스스로 챙긴 게 많으니까. (···) 그렇소. 언론이요 언도(言盜)요. 정론을 펴지 못하고 사회를 오도하는 언도.”
 
 김태동이 매긴 신오적 순위에서 2위부터 5위까지는 법도, 지도, 환도, 공도, 곧 판·검사와 변호사, 땅투기꾼, 공해범, 공무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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