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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지역을 사천(부천, 옥천, 춘천, 화천)을 통해 풀다[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 14] 마포문화재단 대표 김보성

   
▲ 김보성 마포문화재단 대표

젊은 청춘에게 고한다

살다보니 최초의 것을 많이 시도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말하는 김보성의 스펙은 참 다양하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다음기획의 초대 CEO로 활동했고, 부천시 문화정책 전문위원,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 및 포럼 위원장, 전남대학교 문화예술전문대학원 겸임교수,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 학장, 경상남도 경남문화콘텐츠진흥원 초대 원장을 역임...요즘 젊은 청춘들이 말하는 토익, 해외봉사활동...그런 스팩과는 차원이 다른 다양한 중년의 스펙을 만들어 온 그가 이제는 마포구의 문화복지 증진을 위해 마포문화재단에 대표로 또 다른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한다.

아무도 걸어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새로운 길을 만들고야 마는 마포문화재단 대표 김보성이 젊은 청춘들에게 말한다. 요즘같이 정보와 지식이 급변하는 세상에 한 조직에서만 평생을 일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분야의 큰 틀을 벗어나지 말되, 그 곳에서 젊을 때 할 수 있는 풍성하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스펙을 만들어 나가라고...

그가 이번 ‘재미있는재단’이 주최하는 [재미있는 사람이야기전]에 준비해 온 핵심 스토리는 ‘천’으로 끝나는 4개의 문화예술 도시에 대한 이야기였다. 각 지역이 어떤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문화예술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과 그 특성에 따라 분석한 구조적 약점에 대한 내용이 참 흥미롭다. 그는 이 이야기를 ‘사천 스토리’라고 정의 내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새롭게 시도하고 성장해 온 문화정책에 대한 속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사천(부천, 옥천, 춘천, 화천) 스토리

- 부천 스토리

“이 사회에 필요한 문화적 생태계를 만들자는 원칙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김보성의 첫 번째 지자체 문화정책의 행보는 부천에서 시작되었다. 부천에 가기 전에 그는 운동권 문화계(?)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 당시 그가 부천의 문화정책 전문위원으로 간다고 하니깐 문화운동권에서는 “김보성이 드디어 투항하러 간다”고 말할 정도의 답답한 사회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그 주변 사람들에게 소신을 가지고 말했단다. “내가 새빠지게 10년동안 맨땅에 헤딩 밖에 더했냐?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문화와 사회적 공공의식에 대해서 국가가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민간 기부제도가 발달해서 민간 펀드레이션을 하는 것도 쉽지가 않고...그러니 그 공공재원을 우리가 한 번 써보자! 저거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데...그러니 내가 한번 해볼께!”

그는 기존에 습득한 문화와 예술의 전문성에 행정의 힘을 얻어 지역문화예술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한다. 원혜영 국회의원이 부천시장을 역임하면서 부천시의 문화정책 전문위원으로 임명된 그는 복사골 문화센터의 틀을 만들어 냈고, 실질적인 부천의 주요 문화예술 사업을 꾸려나간다.

물론 그 과정에 위기도 많았다. 그 당시 부천은 기존의 개선조직들에 의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한다. 공무원들의 위계질서에 의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하였고, 윗사람의 눈치만 보지 아래 사람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전혀 반영이 안되는 구조여서 새로 임명된 민선 시장이 ‘반 연구원, 반 민간전문위원’으로 구성된 ‘정책개발연구단’이라는 별개의 한시 조직을 만들게 된다. 부천이 정말 문화정책도시로 성공한 사례를 보면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자치단체장의 확고한 의지라고 한다. 원혜영 시장은 숱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문화정책, 문화도시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고, 민간전문가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아는 자체단체장이였다고 한다. 민간전문가가 공무원 조직에 들어가서 그 사람이 어떻게 공무원 조직 속에서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사례를 만든 것이 바로 원혜영 시장이였다.

“부천은 행정이 주도해서 문화를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입니다...한 지자체의 문화정책이 성공한 과정을 보면 자치단체장이 일관된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외부 민간 전문가들을 어떻게 활용하는 가도 중요하고, 얼마나 유능한 공무원들이 이 일을 잘 만들어 내는가...이 삼박자가 맞아 떨어진 지자체는 성공을 합니다. 대부분 단체장은 말로만 그냥 해보겠다고 하지, 의지가 안 실려서 안되거나, 아니면 능력있는 민간전문가라고 들어간 사람이 전혀 행정적인 관계를 설정하지 못해서 공무원들과 원수를 지고 갈등만 일으키거나, 좋은 공무원들이 없는 경우는 실패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후광과 변수라고 하면 지역에 있는 맨파워죠. 지역에 다양한 인력들이 산지해 있으면 좋은 필요 충족 요건을 갖추는 거죠.”

지금 부천은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부천 국제 만화축제, 부천 국제 대학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복사골 예술제 등을 만들어 낸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문화예술도시로 탈바꿈했다. 그 최초의 중심에 바로 김보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성공적인 사례에서도 남들 눈에는 쉽게 보이지 않는 약점을 지속적으로 연구한다. 그가 지금의 김보성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끊임없이 시도한 그 사례 속에서 성공과 실패의 이면을 통해 배우려는 그 자세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 준비 덕분에 그는 기회만 생기면 언제나 새로운 시도를 막힘 없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정이 주도한 도시의 약점은 바로 단체장이 바뀌면서 정책이 바뀌는 것입니다. 지역사업은 지역의 정서를 잘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념만으로 가치만으로 안되는 게 지역사업이죠. 그래서 지역사업이 어렵습니다.”


- 옥천 스토리

옥천에는 국민가요가 되었던 향수라는 노래를 작사한 모더니스트 정지용 시인의 생가터가 있다. 참여 정부 시절, 정지용 시인의 문학적 아우라를 이용해서 지역개발에 활용해보자는 취지를 갖고 지자체 개발에 30억이 배정되어 ‘향수 30리 프로젝트’라는 공모사업이 시작되었다. 그 공모에 서울에 있던 ‘커뮤니티 디자인 연구소’라는 조금한 디자인 회사가 응모한 아이템이 당첨이 되었고, 그 아이템을 가지고 있던 커뮤니티 디자인 연구소 대표가 김보성을 문화예술교육 분야에 최고 전문가로서 그 프로젝트의 개발된 성과를 활용해 주민들이 역으로 활용할 수 있게, 주민들을 매개 인력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을 받아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커뮤니티 디자인, 즉 예술가는 창작만하고 향휴자들은 감상만 하는 그런 구조가 아니라, 아예 정교하게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과정 안에 향휴자들이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사업을 구상하는 방법이 제시되었다. 디자인 자체를 전문가가 하는 게 아니라, 그 디자인 자체를 그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주민들과 함께 디자인 하고, 기본 틀을 토론을 통해 상의하고 만들어서 그것을 작품에 반영하는 취지가 커뮤니티 디자인인 것이다. 그 최초의 실험이 바로 옥천에서 실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 옥천에 흉물이 되어 버려진 한 유원지가 ‘먼진 신세계’라는 예술 체험장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주민들과의 결정을 통해 커뮤니티 디자인이 들어갔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가 끝났다. 그리고, 군수가 고맙다고 연말에 파티를 열어줬는데 거기에 고맙다고 인사를 하러 나온 옥천 출신의 지역 산업과에 있던 한 과장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사연인즉, “그 깡촌에 30억이 떨어졌는데 보통 그냥 지역사회에 들어가면 도로 닦고, 건물 짓고 생생내면 끝나는 사업이고, 그 지역에 많은 건설업자들이 결국 개발사업으로 돈을 버는게 상식인데, 이 30억이 그렇게 안쓰여지고 공모를 통해 일을 맡은 서울에 있는 디자인 회사가 돈을 받아서 수리했다고 하니, 로비도 안 통하지, 그리고 그 돈을 지역사회에 쓴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개발업자들이 그 의미를 들쑤셨을 것이며, 지역신문이 계속 밟았을 것이면, 옥천 시장이 군수에게 얼마나 많은 압력을 넣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압력 속에서 이 과장이 이 일을 해 온 겁니다...이 사업이 다행이 성공을 했고, 그 당시에 그 복받혔던 감정이 떠올라 울었던 거였습니다”

그리고 김보성은 말한다. “옥천은 반관반민의 힘으로 성공한 도시입니다” 공공재원이 투입되어 만들어지는 이 문화지자체의 문화도시 프로젝트에는 자신의 고향의 문화예술적 발전을 위해 애쓴 공무원들이 있었고, 그 지역의 공간을 실질적으로 향휴하는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어 옥천이라는 하는 깡촌이 문화예술 도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민간전문인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는 공무원의 교육에도 누구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써야만 좋은 행정정책을 펼칠 수 있음을 강조하는 말이였다.

   
▲ 강연중인 김보성 마포문화재단 대표

- 춘천 스토리

“춘천을 철저하게 예술가나 기획자가 주도한 문화도시입니다...춘천은 그 동네 이미지가 좋아서 예술가나 기획자가 찾아 들어간 도시입니다. 그래서 강준혁이란 기획자가 춘천인형극제를 만들고, 유진규라는 마임이스트가 춘천마임축제를 만들었습니다. 공조직은 아무 것도 한게 없었습니다. 뒤늦게 지자체의 예산 지원을 통해 축제 후원을 받았지만, 결국 예술가와 기획자가 들어가서 하다보니 호반의 도시가 문화와 예술의 도시가 된거죠.”

하지만 이렇게 기획자와 예술가가 주도해서 만든 성공한 도시에는 “그들만의 리그”라는 약점이 있었다. “아무리 인형극이 잘 된다고 한들, 아무리 마임축제가 잘 된다고 한들, 그것은 인형극단 사람들이나 마임을 하는 사람들끼리의 축제인 것입니다. 만약에 이게 정말 지역의 내발적인 욕구를 통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 조직들 속에서 어떤 사업이 후속 사업으로 이어졌어야 하는 것이냐면, 주민들과 어떻게 함께 생활화 된 마임을 할까? 어떻게 생활화 된 인형극과 관련된 놀이를 할까? 이런 것이 연구가 되고 활성화 되고, 그것이 프로그램화 되어 축적되어야 하는 것이 정상이죠. 하지만 이십 회가 넘는 축제를 해왔지만 주민들이 이런 예술 축제의 실제 주체가 되어 활동한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거죠.” 그리고 그는 최근 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을 사퇴한 마임이스트 유진규에 대한 안타까운 기사를 되집었다.


-화천이야기

“화천은 저와 아무상관 없지만, 21세기 문화적 특성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문화적 성공 사례입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와는 다르게 창조력의 불꽃이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 되고 있다. “한 사람의 예술가의 이슈만으로도 새로운 창조력의 불꽃이 발화가 되는 것이 21세기의 특징”이라며, 그는 이외수를 소개한다. “이외수라는 소설가의 SNS 메시지 하나로 지역이 뜨는 현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21세기 SNS의 시대인 것이다.” 실제로 이외수가 화천의 산천어 축제, 빙어 축제를 홍보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자 그 해 백 삼십만명의 관광객이 화천에 몰리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화천은 산천어, 빙어축제를 통해 벌어드리는 수익만으로 1년을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변방에 있던 한 도시가 갑자기 문화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시대가 바로 21세기인 것입니다.”

   
▲ 참여자들과 강연중인 김보성 마포문화재단 대표

김보성이란 사람의 즐거운 시도는 어디까지일까? 그 끝은 알 수 없지만, 그는 진정 열정으로 똘똘뭉쳐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디지터 노마드(출저:시사상식사전/ Digital Nomad: 정보의 기술의 발달로 한 곳에 정착할 필요가 없어져서 시간적,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정착’을 거부하고 ‘유목’으로 변모해가는 21세기형의 신인류를 뜻하는 용어)임이 틀림없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문화예술분야에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 시대의 진정한 문화예술 기획자임이 분명하다. 김보성이라는 사람 덕분에 앞으로 펼쳐질 마포라는 지역의 문화예술적 행보가 기대된다. 또 어떤 즐거운 시도로 지역을 살아 숨쉬게 할까? 마포문화재단 김보성 대표의 새로운 시도를 응원해본다.
 

재미있는 재단  cnatkdn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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