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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두사호의 뗏목 .. 간섭하지 않으면 간섭 당한다.
   
▲ 테오르 제리코 - 메두사호의 뗏목 (유화 1819년작 491cm X 716cm ) 루브르 박물관 소장


< 신세계 new world >

위 작품은 낭만주의 회화의 시대를 연 대표적인 화가인 제리코의 작품이다.

 이 그림 또한 낭만주의 화풍을 따르고 있다. 자유분방한 색채,역동적인 터치, 비형식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 그림이 전하는 뜻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1816년 신세계로 향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서구열강들은 식민지 쟁탈에 몰두했다. 아프리카 북서부에 위치한 세네갈은 황금해안이 있다는 소문이 있었으며 프랑스 부루봉 왕조는 60명의 과학자와 기술자, 공무원과 가족들, 200여명의 군인, 그리고 일꾼을 포함해 모두 400여명으로 이루어진 개척대를 한 배에 태웠다.

 세네갈로 가는 항해는 순조로웠었다. 선장은 뇌물로 보직을 산 사람이었고 기관장과 항해사와 잦은 마찰이 있었지만 귀족특유의 독단으로 지휘했다. 그러다가 배는 좌초했다. 선장은 고위공무원들의 친인척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원들과 함께 6척의 구명정에 나눠 타고 배를 떠났고 구명정에 타지 못한 147명은 뗏목을 만들어 타게 되었다. 가로 15미터, 세로 8미터.

 뗏목은 방향을 잡아주는 키가 없다. 방향타가 없으면 제자리에서 빙빙 돌게 된다. 구명정 한척이 뗏목과 로프로 연결해 육지로 안내해 주기로 했지만, 그 끈은 끊어진다. 동떨어진 뗏목은 모든 구명정이 시야에서 사라진 바다에서 홀로 남게된다.

 고립된 뗏목은 어떻게 되었을까?

 첫째 날, 뗏목의 가장자리에 있던 총이 없던 20명이 파도에 휩쓸려 사라졌다.

 둘째 날, 뗏목 중앙을 차지하고 있던 총 가진 자들은 폭동을 일으킨 65명을 사살한다.

 3일째부터, 죽은 사람을 먹기 시작했으며 일주일이 지나자 28명만이 살아남아 육포를 말리고 있었다. 13일째에 이르자 15명의 생존자가 구조선을 만난다. 하지만 구조되자마자 허겁지겁 많이 먹었던 5명이 추가로 사망했고 결국 최후의 생존자는 10명이었다. 그 중의 1명이었던 의사 세비니는 이 비참했던 기록을 출판하게 된다.

 제리코는 이 그림을 왼편 아래부터 오른쪽 뗏목 윗부분까지 자연스럽게 시선을 이동하게 구도를 잡았다. 맨 아래의 시체더미로부터 중간의 체념한 사람들을 거쳐 맨 위에 구조선을 발견하고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대각선 구도로 배치시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휴머니스트이자 노예해방론자였던 제리코는 적극적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가장 용감한 난파자로서 흑인을 그렸다.

 메두사호의 뗏목을 구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 흑인은 의사 세비니의 수기에서 묘사되는 생존자 중 유일한 일꾼이었으며 심부름꾼이었던 쟝 샤를 이라는 실존인물이다. 그리고 구조된 후 갑자기 많이 먹어서 사망하게 된 5명 중의 한 명이다.

 이 사건은 당시 큰 관심을 일으켰으며 뗏목의 생존자들은 비열하게 뗏목을 버린 선장을 고소했지만 프랑스 정부는 귀족인 선장을 옹호했다. 이 그림을 그린 제리코는 프랑스의 부정적인 면을 폭로했다 하여 심한 혹평을 받게 된다. 이에 상심한 제리코는 수차례의 자살시도를 했으며 32세에 낙마사고로 사망한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가로 7미터, 세로 5미터에 이르는 대작이며 그림 속의 인물들은 실제의 인체크기에 비례한다. 실지로 그림 앞에 서면 함께 뗏목을 타고 있는 느낌이 온다고 한다.

 
<구조 structure >

 메두사의 뗏목은 구조가 부른 비극의 사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방향타가 없는 배, 뗏목은 질서와 배려가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나눠 먹을 것이 없는 환경이 닥치자 서로가 서로에게 먹이감이 되어지게 됐다.

 그런 환경, 비참한 구조에 처하지 않았다면, 배가 좌초되지 않았다면, 신세계로 향하는 배가 순조롭게 세네갈에 도착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60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타고 있던 배는 왜 좌초되었을까? 아마도 본인 임무에만 충실해서 이지 않았을까? 이 배의 책임자는 내가 아니야, 내 역할은 여기에서 저기까지니까 나와 상관 없는 일에 간섭하지 않겠어.

 그러나 그 배의 선장은 온당치 못한 방법으로 보직을 매입한 귀족이었고 독단적으로 배를 지휘했다. 그런 사람이 선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1789 대혁명 에도 불구하고 지난 시절의 왕조를 그리워하던 국민들에 의해 다시 등장한 부르봉왕조의 폐악한 구조 때문이었다. 양심적인 예술가가 자살을 시도하게 한 것 또한 기득권이 행사하는 억압된 구조의 덫 때문이다.

 구조의 덫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비극적인 뗏목의 이야기는 200년전에 지나갔지만 기득권이 설치해 놓은 구조의 덧은 아직도 작동 중이다. 제도와 법은 늘 기득권에게 유리하도록 조정되려는 관성이 있다. 로비스트들이 하는 일이 주로 이런 조정의 윤활이다. 자본은 언제나 이익교환 이라는 정당성을 앞세워 자유경쟁이라는 명찰의 구조 속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 구조가 순환인지 수탈인지는 관심을 가진 자만이 알 수 있다.

간섭하지 않으면 간섭 당한다.

우리가 속한 구조는 안전한가? 아닌가?

 

최병인 기자  alta1895@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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