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사 교육·가정
쏘우 쿨한 남자[손지영, 발로 뛰는 교육현장]

   
▲ 이소리

남성이란 그런 걸까? 어렵사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 상황이 어려웠지만 나는 오늘 오징어 볶음을 정성껏 해서 내놓았다. 식구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어제 소고기에 이어 손질이 귀찮지만 오징어를 조리한 것이다.― 그 뒤로도 아가를 계속 안았다 눕혔다 하며 기저귀를 갈아주어야 하고 어르고 달래주기도 하다가 어깨띠로 결국 재워야 했다.

화장실도 가고 싶지만 아기가 하도 자지러지게 울어서 그것도 뒤로 미뤄야했다. 너무 무겁고 힘이 든 관계로 몸의 자유를 포기하고 그냥 띠를 맨 채 앉아 쉬던 중이었다. 남편이 네 살배기 큰아이 요구에 스케치북을 찾아 뒤적거리기에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다 쓴 건 표시해야겠어.”

“버려.”

남편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데 서운했다. 그동안 사랑스러운 아들이 그린 작품을 버리려면 일종의 죄책감까지 감수했더랬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게 무심한 부정(父情)처럼 여겨졌다.

“아까워서 어떻게 버려, 일단 가지고 있다가 간추리든가 할 거야.”

“정리도 못 할 거면서…….”

남편이 무심코 던진 그 한 마디에 돌아보았다. 어찌나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평소 정리 못하는 내 습관을 비하하는 것 같았다. 나도 정리하는 덴 젬병인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정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정리가 잘 안 되더라도 현재 집안을 제일 많이 청소하고 닦고 있는 것은 어쨌든 나인데 내 노력을 깡그리 무시하는 언행으로 비춰졌다.

게다가 아들의 작품을 바로 버리기 뭐해 뒤로 미루는 모정마저 대수롭지 않게 가볍게 여기는 것이 현재 내가 중요히 여겨서 임신하고 출산하고 산후조리도 뒤로 한 채 애를 밤낮으로 돌보는 것에 대한 대가인가 참 허망하게 느껴졌다.

내가 발끈하자, 작은 일 가지고 화낸다면서 사람을 소심한 사람 취급하면서 넘어가자고 하며 티비로 눈을 돌리는데 정말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이건 인신공격이야. 왜 정리도 못 한다면서 인신공격해? 사과해.”

내가 연신 말하니까 큰아이마저 그만하라면서 내가 못할 소리를 하고 있는 듯이 취급을 했다. 애 끌어안고 앉아 있는데 속이 타서 좁은 공간에 남편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 두 말 않고 애를 내려놓은 다음 외투만 급히 꺼내 입고 집 밖으로 나왔다. 아기가 울 것이 걱정되었지만, 눈을 질끈 감았다. 그까짓 값싼 모정취급 당하는데 내가 왜 절절매야 한단 말인가.

영화를 한 편 보고 올까. 날씨가 꽤 싸늘하다. 추워서 산후풍 걸릴까 염려될 지경이다. 목욕탕을 갈까. 아기가 걱정돼 목욕도 제대로 못 하고 나오지나 않을까. 그럼 여동생 주영에게 갈까? 핸드폰을 뒤적뒤적, 밧데리가 없었다. 공중전화를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주영이 번호가 뭐였더라, 하면서 걷는데 걸어도 걸어도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었다.

핸드폰 보급이 많아 공중전화가 사라진 모양이다. 그동안 공중전화가 없어진 줄도 몰랐다. 하긴 내가 공중전화를 사용한 게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주영이네 아파트상가까지 갔지만 공중전화를 찾을 수 없었고 주영이 차도 보이지 않았다. 주영이 집도 모르면서 혹 차를 찾으면 뭘 알 수 있으려나 했다가 가능성이 희박해 보여 발길을 돌렸다.

억울하지만 아가한테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남편이 미운 거지 아이 잘못은 없으니 집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사과 듣기 전엔 남편과 한 마디도 하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집으로 향했다. 큰아이 그림 바로 버리지 못한 모정도 무시당하고 시원찮은 몸으로 육아하랴 살림하랴 밥 해대랴 고군분투하는 노력도 정리 못한다고 무시당하고.

오늘 이 미움은 두고두고 남을 것 같다. 남편은 잘 때 더 밉다는데 살면서 너무 실감난다. 오늘 밤 새벽에 수유하고 나면 남편 배를 못 본 척 밟고 지나가고 싶을 것만 같다.

   
▲ 손지영
*교사 손지영은 1979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지금 육아휴직 중에 있다. <연세춘추> 기자를 했으며, 네 살배기와 두 달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손지영 글꾼(boramsam@hanmail.net)

원문보기 :  www.moonhagin.com/
 

문학in  lsr21@naver.com

<저작권자 © 프레스바이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학in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