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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를 둘째처럼![손지영, 발로 뛰는 교육현장]

   
▲ 이소리

아가가 잠들었다. 아가가 제법 큰 것 같다. 일백십 일이 다 됐지만 아직 속싸개도 풀어주지 않았다. 이제 슬슬 풀 때가 된 것 같다. 손도 꼼지락거리고 제법 옹알이 소리도 커졌다. 또 물건을 조금씩 만지기 시작했다. 어제는 안고 있을 때 내 멱살을 살짝 잡았는데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둘째는 어찌 보면 아직 못난이다. 얼굴도 넙대대하고 눈은 살짝 몰린 것도 같고 그런데 큰아이 때의 조바심과는 달리 그냥 귀엽다. 신기하지. 뭘 빨리 가르쳐서 발달을 유도해야겠다는 생각은 잘 하지 못하다가 오늘에서야 큰 애 칠판 위 동물 자석을 보고 웃는 둘째를 보며 내가 너무 내버려두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

속싸개를 너무 오래해서 손을 쓸 수 있는 기회를 막는 건 아닐까? 말을 좀 더 건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백일이 지나서야 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편하게 키울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이 지금 큰 아이에 대한 조바심을 늦추어야 하지 않나 하는 반성으로 다가온다.

친구 아들 경민이는 말이 느렸지만 글자는 일찍 깨우쳐서 전철 노선도를 다 읽고 다닌다. 글자에 관심이 있어 친구가 도운 모양이다. 경민이는 큰 아이보다 고작 한 살이 많을 뿐이다. 내심 부럽기도 하고 큰 아이도 가르치고픈 샘도 들지만 내려놓기로 한다.

엄마의 재촉은 아이의 성장을 방해할 뿐이다. 좋은 그림, 좋은 음악, 좋은 말, 그리고 한가한 자연을 조금이라도 더 벗할 수 있게 내가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결심해본다.

나는 우리 형제 중 첫째다. 어렸을 적에 나는 내 나이보다 더 성숙하게 행동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였는지 밑의 동생들을 보며 느끼는 내 위치에 대한 자각 때문인지 모른다. 리어카의 바나나가 먹고 싶다는 여동생을 구석으로 데려가 “먹고 싶다고 하지마. 엄마 돈 없는데 니가 조르면 엄마 속상해,” 하며 윽박지르거나 엄마가 외출하고 없을 때 동생들을 채근하며 집안 청소를 해놓자며 수선을 떨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또래들이 남자나 연예인 얘기하는 것마저 유치하게 느껴지고 나는 나이가 많은 남자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가 성숙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수학여행 때 옷 사준다는 엄마를 말리고 엄마 옷장에서 꺼낸 옷을 입고 가 찍은 우스꽝스런 사진도 전유물로 남았다.

전업주부인 엄마가 공무원 박봉에 아이 셋을 키워내야 한다는 경제적 어려움을 어렴풋이 나도 느끼고 절약한 것 같다. 그러다가 한번은 난 왜 친구들처럼 철없이 귀를 뚫는다거나 염색을 한다거나 비싼 메이커의 옷을 사보겠다는 도발 한 번 못하는지에 대한 답답함을 느껴 오히려 나를 왜 이렇게 길렀냐며 부모님께 웃지 못할 반항을 한 적도 있었다.

첫째라 대접받고 관심 속에 후하게 자란 반면, 느껴지는 책임감이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것은 육남매의 장남인 아버지와 육대종손의 맏며느리여서 겪는 어머니의 고달픔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큰애에겐 과도한 첫째 콤플렉스를 물려주지 말아야지. 둘째가 생겨 주위 사람들이 동생 얘기를 하며 큰 아이에게 책임감을 주려 할 때 나는 움찔움찔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 또한 큰애에게 “아가 자니까 조용히 하자. 엄마는 아빠가 늦게 오면 너와 아가를 한꺼번에 봐야 해서 힘들어. 조금만 기다리면 엄마가 해줄게.” 하며 고 어린 것이 엄마를 이해해 줄 거라는 기대를 품는다.

오. 첫째의 숙명이여……!

내가 공들여 좀 더 영특할 것이라는,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를 꽤 잘할 거라는, 집중력이 좋고 성취욕구가 있어서 크게 성공할 거라는 기대들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올라온다.

   
▲ 손지영
태명도 첫째는 노벨이 둘째는 깜찍이. 노벨상 탈 거라며 지은 노벨이라는 태명마저 내 욕심을 반영한다. 내려놓자. 내려놓자. 큰애가 퍼즐조각 맞추는데 헤매는 것을 못 참고 “모서리부터 맞추면 쉬워.”라고 말하기 전에 심호흡 한 번 해야겠다. “첫째를 둘째처럼!”이라는 내 모토를 다시 한번 떠올려본다.

*손지영
교사 손지영은 1979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지금 육아휴직 중에 있다. <연세춘추> 기자를 했으며, 네 살배기와 두 달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손지영 글꾼(boramsam@hanmail.net)

원문보기 :  www.moonhagin.com/
 

문학in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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