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시사 교육·가정
아들만 둔 엄마[손지영, 발로 뛰는 교육현장]

   
▲ 이소리

나에겐 자식이 둘 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아들이다. 서운해 하지 말아야지. 남편한테 정붙이고 오붓하게 살면 되지 하면서도 불현듯 딸이 없어 서운한 생각이 든다. 둘째를 안고 나가면 많은 사람들이 큰 아이를 한번 흘깃 보고는 둘째를 보고 “딸이에요?”하고 묻는다. 아들이라 하면 다들 어찌나 안타까워들 하는지. 심지어는 산후조리원 아주머니까지 산통이 채 가시지 않은 나에게 딸 하나 더 낳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친정도 보면 맏딸인 나와 차녀인 여동생이 집안의 경조사를 기억하고 챙기는 것 같다. 아래 남동생은 그저 누나들이 하라는 대로 코치를 받고 비슷하게나마 하면 다행이다. 시댁도 마찬가지.

덩그러니 아들만 둘인 시댁에 가면 장가 안 간 아주버니가 집에 있어도, 집에 없어도 집안은 조용하다. 어머님 그리고 이 집안에 합류한 나만 떠드는 느낌이다. 아주버님과 남편 모두 어머님이 묻는 말에 대답이나 성의 있게 하면 감사하다.

그래도 두 아이를 무통주사도 안 맞고 생으로 낳은 고통이 너무나도 커서 셋째를 낳을 생각은 엄두도 안 난다. 결혼 초 남편과 약속한 두 명의 아이 정족수를 채우고는 숙제를 다 한 양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고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는 입버릇처럼 말한다.

“다 내려놓았어. 아들 키워야 소용없는데 기대 않고 키울 거야.”

그러면서도 내심 우리 아들들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고개를 든다. 젖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채 행복감에 젖어 젖을 쪽쪽 빨고 있는 둘째를 보면 그런 마음이 더욱 확신으로 굳어지려 한다.

나중에 배신감 느끼지 않고 빈 둥지 증후군에 걸리지 않으려면 이런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데 어쩌려는지. 네 살 큰애를 보면 아니나 다를까 벌써 이런 엄마의 환상을 깨뜨려 주고 있다.

올 여름 홍초 광고가 한창일 때 나는 큰애가 어렸을 때 늘 하던 대로 전지현을 보고 외쳤다.

“엄마다!”

나는 종종 티비에 나오는 전지현, 송혜교, 김태희 등 내가 정말 감탄하리만치 예쁜 연예인을 보면 부럽고 아들에게도 그렇게 비치고픈 마음에 큰아이에게 그 연예인이 나인 것처럼 슬쩍 주입을 시키곤 했다. 그날도 그랬던 것이다. 큰애는 늘 하던 대로 날 따라서 전지현을 보고 말했다.

“엄마다!”

그러더니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너가 엄마잖아!”

헉, 이런 굴욕이 있나. 아이 눈에도 전지현과 내가 달라 보이는구나. 어떻게든 비슷하다고 우겨보고 싶었지만 그건 이미 유통기한이 다했다. 그 뒤로는 그런 사기는 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큰애는 애교가 많아서 심심치 않게 “엄마 예뻐.”도 하고 “나는 엄마랑 결혼할 거야.”도 해서 나를 흐뭇하게 했다. 그런데 이것도 그만. 나는 일요일 밤에 월요일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쉽게 보낼 요령으로 큰애에게 물었다.

“어린이집 친구 중에 누가 제~일 보고 싶어?”

“음~ 윤지.”

같은 반 친구의 이름을 대었다. 윤지가 새삼 생각났는지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나 윤지가 좋아. 윤지 예뻐.”

순간 나와 비교해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넘겼는데 남편이 아이를 목욕시키면서 묻는 것이 아닌가.

“엄마가 예뻐? 윤지가 예뻐?”

뭐 하러 묻나 싶으면서도 욕실 밖으로 나오는 소리에 난 귀 기울였다. 설마, 설마…….

“윤지!”

남편이 박장대소하는 소리가 났다. 따따다 단~.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이 내 귀를 울렸다. 어찌나 서운한지, 애 나이를 다 따져보았다. 세 돌도 채 되지 않았는데 엄마 콩깍지가 벌써 떨어지다니. 참 빠르다. 아빠가 웃는 게 기분이 좋았던지 아이는 욕실 밖에 나와서도 내 서운한 눈빛에 아랑곳없이 확인 사살했다.

“윤지가 엄마보다 더 예뻐.”

젖 물리던 아기마저 괜시리 똑같아 보이는 것이 미웠다. 이래서 아들이 소용이 없나 보다. 아이가 하는 소리니까 별 거 아니다 생각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내 서운한 눈빛을 보면 아이가 읽어주고 거짓말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장난기 어린 큰 아들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내가 너무 애를 독립적으로 키웠나. 나 편하자고 정을 너무 일찍 뗀 건 아닌가? 별의 별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나는 분명 며느리에게 아들 뺏긴 것 같은 기분에 닦달하는 개념 없는 시어머니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런 감정은 무엇인가. 가슴이 머리를 따라가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할 것 같았다.

며칠, 그림을 그려도 윤지 엄마를 그리고, 윤지가 엄마보다 좋다고 어린이집 선생님에게까지 말한 큰애가 뭘 느꼈는지 이젠 같은 질문에 엄마라고 답한다. 남편은 낮에 내가 교육시켰냐며 아이가 무심결에 “윤!…엄마”하고 답한 것을 꼬집어 아이 대답을 흉내 내며 나를 놀려댔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

우아한 왕비처럼 살려 했는데 현실은 쉽지가 않다. 사람들 말마따나 나는 정령 말씨 사납고 목소리 굵어지는 ‘아들 키우는 엄마’가 되어간단 말인가.

   
▲ 손지영
요즘도 예쁜 걸그룹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남편도, 큰애도, 어떨 땐 아기마저도 텔레비전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럼 나는 약이 올라 크게 외친다.

“셋 다 나가!”

*교사 손지영은 1979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지금 육아휴직 중에 있다. <연세춘추> 기자를 했으며, 네 살배기와 두 달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손지영 글꾼(boramsam@hanmail.net)

원문보기 :  www.moonhagin.com/
 

문학in  lsr21@naver.com

<저작권자 © 프레스바이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학in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