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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엄마 너 가져. 니 꺼해”[손지영, 발로 뛰는 교육현장]

   
▲ 이소리

큰애의 말이 많이 늘었다. 일상의 대화가 거의 가능하고 내가 이만큼 영어를 한다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국어교사라 그런지 아이의 언어습득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세 살 무렵 큰애가 어려워하던 건 대명사. 지시대명사와 인칭대명사를 헷갈려했다. 한번은 도서관에 같이 들어가는데 뒤에 따라 들어오는 아저씨를 보고는 대뜸 말한다.

“저건 우리 아빠 아니야.”

그 아저씨도 나도 당황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어느 날은 내가 학교에서 늦게 퇴근하자 아이가 불안해하며 선생님께 묻더란다.

“우리 엄마 오고 있어요?”

“음……. 내가 제현이 엄마잖아.”

선생님이 장난으로 말하자, “이건 우리 엄마 아니야.”라고 말해서 선생님이 심지어 자기는 사람도 아니라고 웃으며 얘기를 전달한 적도 있다.

지금도 어려워하는 것은 시간개념관련 명사이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이야기도 “아까”라고 표현할 때가 종종 있다. “아까 엄마랑 아빠랑 동물원에 놀러갔었지~.” 해서 생각해보면 몇 주도 더 된 이야기이다.

“아까’는 오늘 벌어진 이야기를 할 때만 쓰는 거야.” 했는데도 ‘아까, 어제, 전에’를 헷갈려하며 쓰고 그걸 또 나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와중에도 계속 말을 새로 배우고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엄마, 이 공룡 이름이 뭐라구요?”

“프테라노돈.”

나도 생소한 공룡이름을 여러 차례 묻더니 혼자 놀면서 “프테라노돈, 프테라노돈” 되풀이한다. 저렇게 외우는구나. 시험 보는 것도 아닌데 공룡 이름을 되풀이해가면서 외우는 모습이 기특해 보인다.

한 번은 남편이 웃으며 말한다. 책상 위에 있던 손톱깎이세트를 큰애가 자꾸 손대려 하길래 위험해보여 책장 꼭대기에 올려놓았다고 한다. 그러자 큰애 왈.

“대~박!”

언제 그런 말도 배웠지? 놀랍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제법 대화 사이에 흐르는 기류까지 읽어내어 함부로 말하기 어렵게 되었다. 주말에 모처럼 나들이를 나갔는데 길을 따라 걸으면서 큰애가 아빠에게 말했다.

“엄마는 내 꺼야.”

“아니야, 엄마는 아빠 꺼야.”

“아니야, 내 꺼야.”

“아니야, 아빠 꺼야.”

이 상황에 가장 황홀한 건 나. 이것이 말로만 듣던 삼각관계 아니냐. 여기에 찬물을 끼얹는 남편.

“그래, 엄마 너 가져. 니 꺼해.”

오잉? 이게 어떻게 돼가는 전개? 남편이 괘씸해 째려보았더니 남편은 한 수 더 떠서 큰애에게 상냥하게 한 마디 더 한다.

“고마워~.”

나는 약이 올라 남편에게 “뭐라구~?” 하면서 못마땅해 하는데 대뜸 큰애가 오히려 서운해 하며 말한다.

“엄마, 엄마는 제현이 좋아하니까 내 편해야지. 왜 엄마는 아빠만 좋아해?”

표현이 엉성해도 내가 아빠 거 아니라는 말을 서운해 하는 것을 꼬집어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제현이만 아니었음 내 성격에 남편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말았을 것을 큰애 말에 그만 말을 멎었다.

가끔 우리끼리만 한다고 생각하는 대화에 큰애가 불쑥 끼어들어 말하는 바람에 놀랄 때도 있다. 핀트가 어긋나게 듣기도 하고 오해하여 듣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는 그 어떤 말도 놓쳐 듣고 있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경각심이 든다.

“거 봐. 내 말 맞지?”

남편에게 내가 무심결에 말해 놓고 깜짝 놀랐다. 큰애가 언젠가부터 이 말을 쓰길래 왜 그렇게 아는 척을 해대나 했더니 내가 쓰는 말이었나 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이 딱 맞다.

큰애, 작은애, 남편과 나, 한 방에 모두 같이 누워 자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준비할까 하는 대화를 큰애 들을까봐 남편과 나는 짧은 영어로 한다.

“워셔 에이모~ 어글리 더클링~헤이요~”

역시나 알아듣지 못할 외계어로 우리의 영어 대화를 흉내 내는 큰애. 큰애 외계어에 쿡쿡 웃는 남편과 나. 우리는 유쾌함 속에 꿈나라로 향한다.

   
▲ 손지영

*교사 손지영은 1979년에 태어나 연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다 지금 육아휴직 중에 있다. <연세춘추> 기자를 했으며, 네 살배기와 두 달된 아들을 키우고 있다.
 

손지영 글꾼(boramsam@hanmail.net)

원문보기 :   www.moonhagin.com/
 

문학in  ls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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