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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라 왕망, 대한민국 왕망

선거 때만 되면 온갖 좋은 공약(公約)들이 판을 친다. 이를 두고 공약(公約)이 아니라 빌 공(空) 자를 써서 공약(空約)이라며 우리 정치 현실을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야말로 파렴치하다 싶을 정도로 거짓말로 정권을 잡은 것도 모자라, 아예 그와 정반대로 정책을 펴는 우리 현실에서 주목해볼 만한 책이 나왔다.

중국의 전한과 후한 사이에 잠시 존재했던 신(新)나라의 황제인 왕망(王莽)을 주제로 한 책 "왕망 - 명분과 속임수 사이"는 책 제목보다 부제가 눈에 뜨인다는 점이 색다르다. "명분과 속임수 사이"라니 아마도 공약에 빗대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단재 신채호가 "동양 고대의 유일한 혁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던 왕망이란 인물의 집권 과정과 그가 세운 신나라가 15년 만에 끝나는 멸망의 과정은 그래서 흥미롭다. 명분과 속임수 사이라는 부제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적인 정전법(井田法) 등의 정책과 화폐제도 개혁, 국가 전매제도의 강화 등을 폈지만, 오히려 농민들에게 고통을 주었고, 각지의 호족들과 이해가 상반된 상황에서 반란에 의해 신나라는 결국 멸망하고 왕망은 부하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 왕망 명분과 속임수 사이 : 왕망의 통치와 한국의 정치 마주 보기 | 이윤섭 저 | 아이필드 출판 | 2015년 05월

책은 초반부에서 춘추전국시대 공자의 탄생과 제자백가로 대변되는 제후국의 명멸을 짚는다. 왕망이라는 인물이 왜 유교적 이념과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왕조를 세우게 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함이다.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진시황에 이어 유방이 중국을 통일한 후 전한 말에 이르렀을 즈음 기층 농민은 몰락하고 대토지 소유자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는지, "가난한 자는 송곳 꽂을 땅도 없다."라 말할 정도로 토지의 분배 구조가 몰락한 상황에 이른다.

이에 한나라 애제는 토지 소유에 상한을 두는 한전법(限田法)을 발표했으나 기득권의 반대로 이를 시행하지도 못한다. 이렇듯 혼란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오직 명망과 권모술수만으로 그것도 선양을 통해 제위에 오른 전무후무한 인물이라고 저자는 왕망을 평가하고 있는데, 이런 집권 과정이 가능하게 된 이유에는 전제군주의 측근이라는 위치가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26세의 나이로 자식 없이 애제가 사망한 이후 대사마 자리에 오른 왕망은 서둘러 애제의 외척 세력을 제거하고, 9세에 불과했던 평제를 황제로 세운다. 선비, 관료, 소외된 황실의 인사들을 배려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지 세력을 구축한 왕망이 실제 권력을 거머쥔 것이다. 이후 왕망은 자신이 황제로 올린 평제를 독살하고, 스스로 가황제(假皇帝)라 칭하면서 평제의 후계자 중 장성한 후손들은 일부러 배제하고 2세인 유영을 황제가 아니라 황태자로 봉한다.

하늘의 계시라는 등, 상징을 조작하는 과정을 거쳐 황태자인 유영이 성숙하면 물러나겠다면서 황제로 즉위한 왕망은 일주일 만에 천자 즉위식마저 치를 정도로 여론의 전폭적 지지를 얻는다. 이렇듯 왕망은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한 제국을 폐하고 '신(新)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선양(禪讓)이라 칭하지만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할지라도 사실은 찬탈(簒奪)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에 빗대 1980년 전두환이 최규하로부터 선양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바, 이는 이성계도 못한 일이라면서 대한민국의 민주공화정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왕망은 정권 획득 과정에는 능수능란했지만, 국정 운영에서는 현실감이 없어 실패를 거듭하였으며 신나라는 자신의 당대에서 멸망하게 된다. 저자는 그 이유로 왕망이 군주의 기본 의무조차 명확히 인식하지 못했으며, 관료 지식인 등의 사익을 보장함으로써 지지를 얻어 제위에 오른 처지이었기에 이들의 이익을 도외시할 수 없었다는 점을 실패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이윤섭은 책을 여는 말에서 대통령 중심제를 변형된 군주정으로 볼 수 있는바, 오늘날 우리의 대통령 중심제, 그것도 제왕적 대통령제라 칭할 정도로 권력이 집중된 체제가 과연 민주공화정에 적합한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토로한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선출직 공무원이 임명직 공무원을 제대로 평가하고 관리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공무원 등의 정년 보장은 역효과가 작지 않고, 나아가 유교 사회의 가치관이 아직도 남아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아는 인식은 ‘정치’가 아니라 만기친람 식의 ‘통치’ 구조를 낳는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 구조에서 자질이 모자라는 사람과 집단이 권력을 잡게 되면 ‘나라 망치는 기간을 보장해주는 꼴’이라는 그의 지적은 그래서 뼈아픈 비판이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란 전제군주 체제에서 왕이 가졌던 권력을 국민이 나누어 가진 구조라 할 것인데, 자질 모자란 집단의 집권은 결국 왕(王)이 망(亡)하는 꼴을 가져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저자: 이윤섭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는 동네 아이들과 극성스럽게 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책 읽기’에 몰두했다. 한국 경제사를 공부하고 싶어 대학에 들어갈 때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선택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학문 연구할 뜻을 접었다. 대학 시절에는 팸플릿, 소책자, 자료집을 작성하기도 했는데,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다.

지은 책으로는 《쉽지만 깊이 읽는 한국사》, 《천하의 중심, 고구려》, 《역동적 고려사》, 《영어 무한증식 동사사전》《다시 쓰는 한국 근대사》, 《객관적 20세기 전반기사》, 《박정희 정권의 역사》 등이 있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오사마 빈 라덴》,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대중의 미망과 광기》, 《세계는 평평하다》, 《빛나던 나날》,《다시 읽는 삼국사 1,2,3》 등이 있다. 또한 《신동아》 2001년 11월호에 〈오사마 빈 라덴, 감춰진 진실〉과 2004년 8월호에 〈한국·몽골 국가연합론〉 등의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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