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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싸움과 지식인의 격(格)

<고장 난 차>

차가 엉망이면 누가 운전을 해도 차에 탄 사람은 불편하다. 길이 험하면 더욱 그렇다. 누가 운전을 해도 차는 잘 달리지 못한다. 기사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보아 결과는 그게 그거다. 기사도 여행도 결국은 실패한다. 우리는 험한 길을 가고 있다. 기술혁신에 따른 투자위험의 증가와 글로벌 분업구조의 변화,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이 불러오는 청년실업의 문제와 과다한 자영업자 문제, 가계부채와 복지재정 문제, 점점 더 낮아지고 있는 정치사회적 신뢰 등, 길은 갈수록 험해지고 있다. 이 길 위에서 모든 대통령이 실패하고 있다. 잠시 반짝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만신창이가 되어 청와대를 떠난다. 국회의원도 마찬가지, 대부분 몹쓸 사람이 되고 있다. 멀쩡한 사람도 국회의원 배지만 달면 아무 의미 없는 싸움질에 함몰된다. 여기에 공무원도 복지부동, 움직이지 않는다. 시험 하나는 쳐서 들어 간 사람들이 너나없이 무능한 눈치꾼이 된다.

무슨 말인가? 이쯤 되면 물어봐야 한다. 사람이 잘못되었는지, 차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둘 다 잘못되었는지 물어야 한다. 기사 욕만 하는 사이, 좋은 기사들은 그 욕을 피해 멀리 가고, 그야말로 운전을 해서는 안 되는 자들만 서로 잘할 수 있다고 설쳐대는 판이 된다. 행여 지금의 정치판이 이런 판이 아닌지 물어보아야 한다.

봐라. 이미 이곳저곳에서 한 이야기이지만 행정부에서 시작한 법안이 국회를 거쳐 집행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균 35개월 정도가 된다. 1987년부터 2006년까지 국회를 통과한 3천 개 이상의 법률을 전수 조사한 결과이다. 물론 그 뒤로도 별 변화가 없다는 조사들이 있다.

이런 구도 아래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임기 첫해 예산은 앞 정부가 편성한 것을 써야 하고, 법을 만들어가며 하는 일은 레임덕이 된 이후에야 시작할 수 있다. 여기에 시장(市場)과 시민사회 모두 대통령의 지도력이 발휘될 여지가 별로 없다. 결국, 천하에 없는 능력을 가진 대통령이라 하여도 그 나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회는 어떤가? 다른 문제는 다 접어두고서라도 1년에 상정되는 법안의 수만 해도 5천 건이 넘는다. 싸움이 일상화된 국회, 또 대립하고 타협하고 하는 것이 그 생명인 국회가 이 많은 법안들을 제때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까?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실어 나르는 것도 아니고, 쉽게 합의하고 넘어갈 수도 없다. 또 그렇게 하는 국회는 이미 국회가 아니다.

결국은 상임위원회 중심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것은 본회의를 그냥 통과한다. 대개의 경우 다른 상임위 소속의 의원은 그것이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결국, 상임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수의 의원이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꼴이 되는데, 이해관계 집단들은 이러한 구도를 놓치지 않는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들 소수 의원들 포획한다.

그러나 이 구도마저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상임위 체제로도 감당이 안 되니 이제는 소위원회를 만들어 활용한다. 국회권력은 더 파편화되고, 소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을 향한 로비는 더욱 극성을 부린다. 그러니 여야가 대치하고 있는 식물국회에서도 특수이해를 반영하는 이런저런 법안들에 대한 여야의 협조 아래 통과되곤 한다. 그만큼 국회의 권위와 정당성 그리고 가치는 더 떨어지게 된다.

관료조직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수많은 법과 령이 이들 관료들에게는 밟으면 터지는 지뢰가 된다. 그렇다고 이 지뢰들을 치울 수도 없다. 주인인 국민과 대리인인 관료의 거리가 이렇게 먼 상황에서, 또 의회가 제구실을 못하는 상황에서, 이마저 치워버리면 세상이 모두 이들 대리인의 세상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믿지는 못하겠고, 일은 시켜야 하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관료조직은 인재의 무덤이 되어 가고 있다.

이런 체제를 그대로 두고, 다시 말해 이렇게 고장 난 차를 그대로 두고 서로 내가 운전을 하면 차가 쌩쌩 달릴 것이라 주장한다. 심각한 국민 기만행위이다. 심하게 이야기하면 사기나 다름없다.

<대통령들의 죽음: 무엇을 고민할 것인가?>

사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이 당시의 권위주의적 통치양식이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할 수 없음을 알린 것이라면 김영삼 정부 이후 모든 대통령의 실패는 지금과 같은 거버넌스, 즉 국가운영체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려준 것이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이런 체제에서 개혁적이면 개혁적일수록 만신창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지금의 구도로는 안 된다. 차를 고쳐야 한다. 어떤 방향이나 내용으로 개혁하고 재정비하건 고쳐야 한다. 차라리 기사를 바꾸는 문제는 그 이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존의 정치권은 이를 바꿀 것인가? 못한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먼저 그 하나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의식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여당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야당 또한 마찬가지이다. 모든 문제를 그저 상대가 잘못해서 일어난 문제로, 즉 사람의 문제로 몰아붙이며 ‘분노장사’나 하고 있다.

또 하나는 그들 자신이 기존의 잘못된 거버넌스 구조의 기득권자들로 이 잘못된 체계의 일부라는 점이다. 예컨대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 내지는 국가운영체계는 분권과 참여 그리고 소통을 바탕으로 할 가능성이 크다. 즉 지방분권과 숙의(熟議)를 강조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조할 가능성이 큰데 이들은 불행하게도 대의민주주의와 중앙집권 위에서 그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

야당은 좀 낫지 않으냐고? 자치와 분권,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을 강조한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 같은 분들을 정신적 지도자로 섬기고 있으니 말이다. 틀렸다. 나을 게 하나도 없다. 참여정부 이후 자치와 분권을 위한 법안 하나 제대로 낸 적이 없다. 시민을 깨어 있게 하는 일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참여’라는 이름으로 모바일 투표와 같이 파편화된 분노와 신념을 끌어모아 자기 세력을 굳히는 일을 더 열심히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이미 그 안에 없다.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기간 내내 이 문제에 천착했다. 왜 학자들은 국가운영체계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하지 않느냐 탓하기도 했다. 학자들이 왜 정치평론가 수준의 이야기만 계속하고 있느냐 되묻기도 했다. 그러다 이런 문제를 거론하는 학자가 있으면, 마치 오랜 동지를 만난 양 기뻐했다. 일부 학자를 수석보좌관 회의에까지 불러 발표하게 하기도 했었다.

지금의 야당에 그런 고민이 있는가? 관두자.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대할 것이 없다. 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기는 데 있다. 이겨서 어떻게 하자는 그림도 없다.

조선시대의 당파싸움 같다고? 그런 소리 마라. 조선의 당파는 그래도 원칙과 철학이 있었다. 그냥 마구잡이 권력을 쫓아 싸운 것만도 아니다. 지금의 여야 정치는 조선말기의 세도정치다. 이기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국민이 보기에 그저 ‘안동 김씨’에 ‘풍양 조씨,’ 누가 이기건 아무 의미가 있는가? 나눠 가질 자리의 얼굴이나 바뀌겠지.

아무튼, 이들에 기대할 일은 없다. 그러면 국가운영체계의 변화에 대한 고민은 누가 할 것인가? 결국은 학계와 언론, 그리고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좀 나아질까에 대한 고민에서 빠져나와 누가 해도 잘 될 수 있는 구도가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학계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그렇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싸움이나 여야 간의 대립이나 갈등이나 쳐다보고,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에 대한 유치한 논의에 함몰되어서는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어느 한 쪽 편을 들더라도, 이런 무거운 고민 위에서 움직여야 한다. 관중이라도 그냥 보통의 관중이 아니지 않은가? 그 격에 맞는 고민을 하고, 그 격에 맞는 담론을 제기해야 한다.

다시 이야기한다. 누구든 실패할 수밖에 없는 체제를 그대로 또다시 실패한 대통령을 욕만 할 수는 없다. 이순신 장군이 들어가도 안 되는 국회, 즉 이미 그 생명을 다한 중앙집권적 의회구도를 그대로 두고 국회의원들을 ‘파렴치하다’ 욕만 할 수 없다. 지뢰밭에 놓여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관료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욕만 할 수 없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몇 명의 대통령이 죽고, 얼마나 많은 국회의원이 파렴치한이 되고, 얼마나 많은 인재들이 무기력하고 무능한 관료로 전락해야 우리는 질문을 제대로 하게 될까? 저 정치권의 어리석고 의미 없는 싸움에서 빠져나와 질문다운 질문을 던지게 될까?

김병준(전 청와대 정책실장)/사회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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