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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도 역사다!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못 이긴다.
  • 한성안 영산대교수
  • 승인 2015.11.2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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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경제학에 대해 인문학적 접근을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나는 철학이 경제학에 미친 영향들을 드러내 보여 주며 그 중요성을 부각해왔다. 하지만, 인문학에는 역사학도 포함된다. 따라서 경제를 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중요하다. 철학이 인식론과 존재론, 인성론 등을 통해 경제학의 방향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버리듯이 역사학의 연구방법론 역시 경제학자들의 세계관과 연구방법론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는 ‘경제사’(economic history)라는 연구 분야가 있다. 역사를 경제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세부전공분야다. 물론 역사가 경제학의 세부전공분야로 국한되지 않는다. 역사적 관점에서 경제를 해석하는 학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1840년대 독일에서 등장한 ‘역사학파 경제학’이 그것이다. 역사를 경제적 요인에 따라 보는 ‘경제사’(economic history)와 달리 역사학파 경제학(historical economics)은 경제를 역사적 방법으로 보는 점에서 양자는 서로 다르다. 경제학의 ‘세부전공’으로서의 경제사와 ‘경제학 연구방법론’으로서 역사학파 경제학을 혼동하지 말 것을 부탁드린다.

1840년대에 시작된 역사학파경제학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연구방법론으로 채택한 진화경제학(Evolutionary Economics)이 대표적이다. 진화경제학은 베블런과 슘페터의 역사연구방법론을 경제학 연구에 적용시킨다. ‘진화적’ 연구방법론으로 불리는 이들은 전통적인 역사학파경제학이나 마르크스경제학을 어느 정도 공유하면서도 그들과 결정적으로 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여느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처럼 경제체제는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라고 단언한다. 이 과정에서 경제체제는 양적인 변화는 물론 ‘질적’ 변화를 겪는다. 변화된 경제체제는 서로 ‘불연속적’이다. 자본주의를 영원불변의 존재라고 보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질적 변화’를 부정하는 신고전학파 주류경제학에 반대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 역사, 그리고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요인은 전통적인 역사학파경제자들에 비해 훨씬 구체적이다. 역사의 변화 동력은 단지 경제적 요인만이 아니라 다양하다. 다원론(pluralism), 더 정확하게는 ‘다중론’(plurality)에 따라 역사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이들에게 자본주의시대에서 경제를 변화시키는 강력한 요인은 ‘제도’와 ‘기술’이다. 인간의 본능, 경제, 제도(정치, 문화), 기술은 상호작용과 피드백과정을 통해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데, 그 중 제도와 기술이 상대적으로 강한 추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주의의 전체 역사는 시간에 따라 양적 변화를 겪는 것은 물론 질적인 변화, 곧 불연속적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들의 실증 연구 결과에 따르면,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경제는 약 다섯 번의 질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 첫 번째의 전환이 방적기의 발명이 기폭제가 된 영국의 산업혁명이고, 두 번째가 19세기 전반기의 증기력과 철도산업이 가져온 생산력의 발전이며, 세 번째 전환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기술진보 곧, 전기를 이용한 내연기관의 발명, 철강산업의 발전이 그것이다. 그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석유라는 동력과 대량생산방식에 기초한 자동차산업, 합성소재산업이 네 번째 주기를 형성한다. 다섯 번째 변화를 겪고 있는 현대자본주의에서는 ‘마이크로칩’을 응용한 IT산업, 생명공학, 환경산업이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

각각의 단계를 주도하는 기술, 동력, 그리고 산업은 모두 ‘질적으로’ 다르다. 달리진 요인들이 자본주의를 양적으로 변화시킴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 요인들은 자본주의를 질적으로 바꾼다. 그런 의미에서 기술적 측면에서 자본주의경제는 ‘불연속적’이다. 나아가 기술적 요인은 제도를 바꾼다. 그것은 정치제도와 철학, 나아가 생활습관, 사고방식마저 바꾸는 것이다. 기술의 변화가 제도, 문화 더 나아가 총체적 사회를 혁명적으로 바꾼다는 의미에서 이러한 변화는 진화경제학자들에 의해 “기술경제패러다임(techno-economic paradigm)의 변화”로 불린다.

예컨대, 산업혁명이 강화되면서 기계시대가 본격화되자 노동자들은 더 이상 집에서 일하지 않게 되었으며 삶은 ‘기계의 법칙’에 종속되었다. 규칙적 출근과 정확성의 준수문화가 자의성과 무질서에 대한 관용문화를 대체했다. 기계 산업의 영향은 한층 깊었다. 기계과정은 미신과 신앙을 추방하는 대신 사실과 ”과학적“ 사유를 장려한다. 농업에 의해 지배되던 경제는 자연의 변덕에 좌우된다. 자연력은 광포하며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를 ‘초자연적 존재’의 탓으로 돌리기 쉽다. 그러나 기계에 지배되는 경제는 이런 ‘형이상학적 여지’를 더 이상 남겨두지 않는다.

백여 년 전, 베블런에 따르면 현대인들은 “덜 낭만적이고 덜 관념적”이며 “덜 허식적이고 덜 경건”하게 되어 버렸다. 베블런의 관찰은 들어맞았다. 기독교인의 수는 미국에서 여전히 강력하지만 유럽에서는 격감하였다. 천 명 이상을 수용하던 독일 교회는 현재 50명 미만의 노인들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과학, 기술이 생활습관과 문화를 바꾸어 버린 것이다.

기술의 변화가 제도의 변화, 더 나아가 생활방식의 질적 변화를 야기하는 경우는 현대사회에서도 재현된다. 자동차와 전화의 발명도 한 사례에 속하지만 최근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명이 우리 사회의 문화에 미친 영향은 가히 혁명적이다.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는 역사적 유물로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내게도 그건 이미 생소하다. 어쩌다 ‘정성어린’ 카드를 받으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시대에 걸맞지 않는’ 정성에 대해 미안할 따름이다. 요즘 내 책상 위는 매우 깨끗하다. 몇 편의 종이논문과 몇 권의 책, 필기메모 등으로 1년 내내 난장판이었던 이전의 내 모습과 딴판이다. 태블릿 PC에 모든 기록과 참고할 논문들이 수백 편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공부한답시고 어지러운 책상은 시대착오적이다. 교육방식도 바뀌었다. 사이버대학, 인터넷 강의 등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본주의경제는 초기와 같이 그대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기술과 제도의 변화에 따라 역사적으로 ‘거대한 질적 변화’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문화와 생활습관도 바뀐다. 바뀐 문화에 대해 옳고 그르다는 판단을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시대에 맞는 문화와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문화는 존재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는 문화는 외면당할 뿐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난받는다. 만일 그런 문화가 대중을 설득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을 지향할 경우, 그건 문제다. 외면당하고, 비난받는 시대착오적 방식은 대중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10여만 명이 서울에서 민중궐기대회를 열었다. 폭력시위와 과잉진압!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법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정당성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다. 법의 전문가들이 계몽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시민의 의사표현을 차벽으로 원천 봉쇄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내 상식과 어긋난다. 민주사회에서 내 억울함을 공개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 ‘데모’(demonstration), 곧 '내 억울함을 시위'하는 그게 표현과 집회의 자유 아닌가? 이런 표현과 집회의 자유를 원천 봉쇄하지 않았더라면, ‘폭력적’ 대응이 일어날 확률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약자가 먼저 싸움 거는 경우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데모 방식에 대해 나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화염병, 각목, 쇠파이프, 구시대적 운동가요, 전투적 구호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지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오늘날 청소년들은 이런 도구와 문화적 수단에 전혀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감동은커녕 두려움을 가진다. 나아가 그것은 그들에게 우스꽝스럽게 생각되며 촌스럽게 보일 뿐이다. 오죽했으면 개그콘서트의 소재로 되어 조롱당하고 있을까? <횃불 투게더>라는 그 코너를 보고 있자면 폭소를 터뜨리면서도 가슴 아프다. 붉은 머리띠, 운동가요, 대중연설, 창백한 지식인이 진보적 운동의 상징물로 되어 웃음의 소재로 전락해있다.

가슴 아프지만 그런 방식들이 더 이상 새로운 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다. 시대착오적인 문화로 대중과 소통하기는 어렵다. 소통이 안 되면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고, 그 결과 동조자도 얻어낼 수 없다. 정치는 세력, 곧 힘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동조자가 없으니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모두가 존중받는 좋은 사회는 물 건너간 셈이다.

지지난 주 부산의 서면에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집회에 참여했던 때가 다시 생각난다. 집회방식이 하나도 바뀐 게 없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마이크 연설, 자기들끼리 몇 번의 구호제창이 전부였다. 자기들끼리 바라보며 소리치며 주먹만 흔든다. 집회참여자와 시민들 사이의 소통은 없었다. 오히려 먼 산 바라보고 있거나 앞만 보고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영문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피켓을 들고 시민들을 향했던 것이다. 식은 짤막해도 된다. 나머지 시간은 시민들을 설득하는데 투자되어야 한다. 소심하게 모여 자기들끼리 주먹 쥐고 소리만 칠 게 아니라 담대하게 나가 부드럽게 설득해야 한다. 여기서도 시대에 맞는 방식이 고민되어야 한다.

지난주 토요일(11/14) 서울에서 민중궐기대회가 있는 날 나도 가만히 앉아 있지는 않았다. 다시 부산의 서면 쥬디스 백화점 앞으로 출정(!)했던 것이다. 지지난 주 나갔기 때문에 안 갈 생각이었는데, 와이프가 다시 가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이다. 우왕, 피곤하다! 게다가 페북 친구들과 약속도 지켜야 했다. 그런데 가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이쿠나, 서울에서 만나자는 말을 못 들었던 탓이다. 이런 낭패가!

허탈감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의무는 다했다는 생각에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나온 김에 오랜만에 저녁밥이나 먹기로 했다. <역전우동>이라는 간판이 향수를 자극했다. 우동은 자기가 먹자 해 놓곤 자기는 비빔밥을 잘못시켰다. 나는 우동을 제대로 시켰지만, 우동을 아내에게 양보하고 내가 별 먹고 싶지 않았던 비빔밥을 대신 먹었다. 나중에 한 가닥 얻어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진짜 오랜만에 외식했습니다! 쭈글랑해 민망하지만 그래도 다음번보단 현재 모습이 낫다는 게, 제 산 경험입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도 계속 변하는데, 별 안 좋은 모습으로 바뀌더군요. )

먹다가 대뜸 물어보았다. 피아노만 치며 무당파이던 자기가 왜 갑자기 나보다 더 실천적 진보주의자로 전향(!)했느냐고. 대답은 이랬다. 자기 일도 아닌데 망하는 가게만 보면 걱정하는 모습, 아무리 권해도 자기 옷 사는 데는 돈을 아끼면서 남을 돕는 덴 별로 아까워하지 않는 모습, 이게 진보라고 생각해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자화자찬이 되어 버렸지만, 이제 민주화운동은 대중을 설득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 같아 아내의 생각을 인용해 보았다. 패러다임의 변화에 걸맞은 운동방식은 무엇인가? 이기고 싶은가? 방법을 바꾸지 않으면 절대 못 이긴다. 운동도 역사다!

그리고 상대는 무덤에서 되살아난 귀신이며, 자기 권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이코패스들이며, 자기 울분을 남에게 전가해야 속이 풀어지는 표독스런 우울증환자다. 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추신: 이로 인해 국정화 교과서문제가 잊혀 버려 유감스럽다

한성안(영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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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 영산대교수  saintcomf@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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