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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라는 것에 대하여…

부업으로 대리운전을 시작한 지 어언 1년 반이 다 되어간다. 운전에는 자신이 있어서 나름 즐겁게 일하는 편인데 오늘은 가벼운 사고를 냈다. 느낌이 안 좋은 고객이었는데 운전석에 앉자마자 말을 시키고, 게다가 주차장을 나오며 사이드미러를 조작하다가 그만 벽에 자동차 옆을 긁어버린 것이다.

딱 운전하고 싶은 맘이 사라진다. 15,000원 벌려다가 보험 자기부담금 30만 원이 날아가게 생겼으니 어이가 없는 판인데, 고객은 약간 빈정대는 투로 말을 한다. 마음이 상해서 저러려니 하면서 목적지까지 일단 운전을 하는데, 가는 동안 보험사에 당장 전화를 하라고 한다. 운전하면서 보험회사 전화번호까지 찾을 일은 아닐 것 같아 그냥 갔다.

목적지에 도달해 손상된 부위를 촬영하고 보험 접수하고, 아예 출동하라고까지 요청했다. 나중에 다른 말 안 나오게 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기다리기는 싫다고 한다.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고객인데 싫은 일을 강요할 수도 없어 보험사 출동 직원에게 오지 말라고 한 후, 보험 접수번호 알려주고 자리를 떴다. 나중에 뭐라 한들 나로서야 자기부담금 이외에 더 부담할 일은 없다.

운전할 기분도 아니라서 근처 편의점에서 혼술을 했다. (이게 얼마 만에 먹는 술인지…) 심야버스를 타니 대리운전하는 분들이 거의 전부다. 사고 낸 이야기를 하니 옆에 앉은 분은 나와 비슷한 기간 동안 일을 했는데, 그런 사고가 벌써 4번 있었다고 한다. 120만 원이 나갔다는 얘기다. 나는 꽤 일찍 운전면허를 취득하였지만, 내 차를 몰아도 이런 식의 사고조차 낸 기억이 거의 없다.

이 사고 탓에 직원들 밀린 급여라도 조금 보태려고 모아놓은 돈을 날리게 생겼으니 너무도 실망스럽다. 내 탓이라는 게 더 실망스럽고… 그런 가운데 옆에 앉은 분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요즘은 휴가철도 끝나지 않아서인지 일이 그나마 없는데, 30만 원이면 며칠을 일해야 하냐는 말이 나왔다. 계산해 보니 작게는 5일, 길게는 일주일 동안 일해야 겨우 벌 수 있는 큰돈이라면서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일할 의욕이 확 떨어진다고 푸념을 한다.

만나서 반갑고 고마운 고객도 있지만, 대개는 이런 경우 골치 아팠던 고객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런 푸념을 주고받다 보니 나 또한 마음이 조금 풀린다. 공수래공수거라는 말도 있는데, 벌면 쓰는 것이고, 없으면 없는 대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마음도 들 뿐만 아니라,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아마도 내게 위로가 된 것 같다.

이런 걸 동병상련이라고 하던가? 같은 직업, 같은 환경이 아닐 때 우리는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그걸 느끼려고 노력하는 사회가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위정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나는 오래전부터 측은지심이란 사자성어에는 상하관계가 내재하여 있다고 생각해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우리는 누구든 죽어야만 하는 존재이자 자기가 선택해 이 세상에 나온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로를 위로(慰勞)하는 사회야말로 사람이 최소한 생을 포기하지 않고도 살 만한 세상이 아닐까? 아마도 진정한 선진국이란 바로 이런 사회를 일컫는다고도 할 수 있겠다. GDP니 하는 숫자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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