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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된 빚에 대한 소회

1993년에 자동차를 하나 샀다. 당시 내게 사기를 친 사람이 있었는데 고소를 해 반액 정도인 1억 2천을 배상받고 나머지 금액은 나중에 갚겠다는 각서를 받고 취하서를 작성해준 적이 있었다. 이 자동차의 할부 보증인이 바로 그자의 처였다. 왜냐하면, 그자의 집이 처 명의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약속을 안 지키기에 고의로 할부금을 내지 않았다. 연대보증인에게도 청구하라고 당시 대한보증 측에 통보했는데, 이걸 안 해서 지금까지 남아있는 빚이다. 원금은 6,412,289원인데 이자가 불어 지금은 32,855,140원이 됐다.

서울보증보험에서 보낸 재산명시 신청 예고 통지

이 금액은 사실 당시 내게도 그자에게도 그리 큰 금액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강원도 강릉시에 3개의 주유소 허가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인으로서 내 일을 도와주던 인간이 내게서 훔치다시피 해서 가진 주유소를 운영하던 처지였기 때문에 경매에 들어가면 안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주유소는 정유사와 외상거래를 하는 게 보통이고, 당연히 그 아파트는 정유사에 담보가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6백만 원 안 갚으려다 수억을 한꺼번에 물어주고 주유소 문 닫을 바보는 없다. 경매 신청만 넣어도 하루아침에 이를 갚았을 것이고 나는 손해액에서 6백만 원 정도를 회수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방은 그렇다. 서로 알고 지내는 그런 게 강해서 차일피일 미뤘다.

이후 IMF 시기를 맞아 대한보증이 넘어진 후 서울보증으로 합쳐졌다. 이후에 창피한 일이지만 가재도구 압류까지 한 번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이 채무 하나 때문에 평생 은행 돈을 끌어와 사업을 한 적이 없었다. 불행이라면 그런 불행이 없다. 잘 나가는 상황에서 회사를 키우려 해도 이게 걸림돌이 되었는데 도저히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성격 탓이겠지만, 나는 당신들 회사가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면 끝내 변제를 거부했다. 국민 세금 20조를 잡아 잡수신 회사가 채권 회수에 성실하게 임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연대보증인 아파트에 압류만 할 게 아니라 경매도 진행해야 마땅하다고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연락이 왔다. 원금에 이자 1원이라도 형식적으로 붙여 갚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이었다. 그때야 물어보니 당사자는 2007년에 사망했고 그 처 또한 사정이 별로 좋지 않다고 한다. 나는 그건 좋은데 기록을 달라고 했다. 보증보험 회사로서 제대로 일을 처리했는지 알고 싶다는 게 내 뜻이었는데, 답이 없다. 금융감독원에 요청해 자료를 받았다. 대한보증 시절의 자료 5년 치가 왠지 모르게 없다고 한다. 이 건과 관련하여 내가 내용증명 보내고 뭐하고 등등 중요한 시기의 기록이 없어진 것이다. 국민 세금 20조 원을 날린 회사답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이 건으로 말미암아 내가 20년 동안 치른 피해가 얼마일까? 나는 휴대전화 하나도 할부로 산 적이 없다. 남들 다 혜택 보는 약정요금 할인에 할부로 사는 휴대전화를 매번 전액 주고 사서 등록하는 방식으로 썼고, 회사가 성장해 비록 내가 다녔던 회사에 납품하는 처지라 얻은 기회였겠지만 재벌 대기업에서 엄청난 제안을 해도 은행 채무를 일으키려면 억울하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물론 나는 은행 돈 써가며 사업 키우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그걸 안 한 것이지만, 이 보증보험 채무도 크게 한몫을 했다.

내가 살면 얼마나 살 것이며, 그리 두려운 것도 없는 처지인데, 원금의 몇 배나 되는 이자 물어주면서 불성실한 보증보험사 호주머니 채워주는 바보짓은 죽어도 못 할 것 같다. 바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어려워서 그렇지 시간 충분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거꾸로 소송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런 경우가 아닐지라도 빚을 한 번 지면 도대체 시효도 없이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일까 싶은 마음도 있다. 이 나라는 실패든 또 어떤 경우이든 경제적으로 한 번 곤란해지면 회생할 방법이 막힌 나라 같다. 그나마 요즈음에는 개인회생도 있고 파산 제도도 정비되어 벗어날 길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이런 경우는 억울하지 않나? 경우가 아니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 죽을 때까지….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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