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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우리에게 해주는 것타국에 나가 죽는 것도 선택 중의 하나다

며칠 전 베트남에서 전화가 왔다. 어느 후배의 가족 연락처를 아느냐는 친구의 전화였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베트남에 온 후배가 갑자기 피를 토하고 병원에 실려 갔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속물인 나는 병원비만 수천만 원이 나왔겠다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괜히 후배 반갑게 맞이한 대가로 경제적 부담을 지는 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병원비 걱정부터 해야 하는 인생이 뭔가 싶다.

수소문을 해봐도 가족의 연락처를 알 길이 없어 며칠 후에 다시 전화하니 현지 영사관에서 처리한 것 같다고 한다. 상황을 물으니 간암 말기였다고 하는데, 오자마자 그렇게 술을 계속 마셨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몇 개월 전에 우연히 만났고 필자가 오래전에 퇴사한 회사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후배라고 하기에 몇 가지 작은 도움을 준 적도 있었다. 당시에도 몸이 안 좋아 보였고, 하는 일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멀리 타국 땅에 가서 세상을 등졌다는 것인데, 이 며칠 동안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술을 먹으면 안 된다고 입버릇처럼 본인이 말하던 걸 생각할 때, 고의로 술을 먹은 것 같고 이는 결국 죽기 위한 마지막 여행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좋은 회사에 다녔고 학력도 모자라지 않았지만, 뜻한 바 있어 사업에 나섰던 사람의 최후 모습이다.

영사관에 직접 확인은 안 했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전화비도 다 돈이다. 취재라면 취재인데 산 자들의 문제들에 나서 개인 돈까지 쓴 일이 많았지만, 좋은 경험으로 남은 적이 없었다.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라도 제대로 들은 기억이 남았다면 좋았으련만, 우리의 노력이 적은 밑거름이라도 되어 대형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들에게 고마워하지 우리의 존재는 까맣게 잊는 것도 모자라 고무신 거꾸로 신는 식의 행동으로 가슴에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영세 언론인 '프레스바이플'이 돈을 쓴다는 것은 돈 많은 언론과 비교할 때 엄청난 의미가 있다는 것도 생각 안 하는 듯하다. 숨 쉬는 것도 돈인 세상에서 대형 언론에서는 국제전화나 출장비 정도는 적은 돈이겠지만, 우리에게는 전부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가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무언가 해주기는 했다는 허탈한 대화를 친구와 나눴다. 적어도 해당 국가 병원의 치료비는 정산했을 것이고, 시신 처리도 법에 따라 했을 것이니, 그 친구는 이 세상 떠나는 길에 그나마 국가 덕을 본 것이다. 가족이 있는 경우라면 이 비용도 청구하지는 않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만, 여하간 짐승의 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나마 다행일 것인데, 죽은 이가 짐승의 밥이 되든 화장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되든 그게 무슨 차이인가 싶기는 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이게 남의 일도 아니겠다 싶었다. 재산도 없는 상황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나라 안에서 죽는 것과 나라 밖에 가서 죽는 게 차이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가능한 한 오지에 가서 죽어 변사체가 된다고 가정했을 때, 적어도 나라 안에 남은 가족들은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을 것이고, 죽음을 앞두고 경제적 심리적 고통을 주지 않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뒤늦게 알면 산 자들에게 적절한 변명거리도 될 것이다.

내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다고 한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일반인 15.6%, 의료인 33.6%, 환자·보호자 37.2%가 이 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하니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명의료결정법은 더는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지 말라고 미리 결정해 의료진에게 확인시켜 두는 것으로 일명 '웰다잉법', 또는 '존엄사법'으로 불린다.

이 경우와는 조금 다르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 있다. 치매가 걸렸을 경우 등 내가 어쩌지 못하는 상황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에 대한 것이다. 어느 날 나 자신도 모르게 가족과 사회에 부담이 되는 존재가 되었을 때, 과연 생을 유지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나는 입버릇처럼 주변에 하는 말이 있다. 제정신이 잠시라도 돌아오는 틈을 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는 게 그 내용이다. 이건 존엄사가 아니라 안락사에 관한 문제겠다.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힘든 처지일 때 이런 생각은 그저 상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내가 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가족일지라도 남은 이들에게 조그마한 고통이라도 남기면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그저 나만의 생각은 아닐 듯하다. 사람 낳고 돈 낳았다는 말은 이제 흘러간 이야기일 뿐, 돈이 곧 인격이라는 세상의 풍조를 보건대 타국에 나가 죽기를 선택한 후배의 외로움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무겁다. 이게 과연 사람이 사는 세상인가 싶고.

미안하구나. 이제 편히 쉬기를 바란다. 윤회라는 게 진짜 있다면 그 굴레에서마저도 벗어났으면 한다.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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