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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 물태우의 선택변화의 시대에 올바른 선택은 생존의 문제

어느 강연에선가 이 모 의원은 정치지도자가 변화의 시대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하면서 그 예 중의 하나로 노태우의 북방정책을 꼽았다. 철들고 한 일이 군부독재와의 투쟁이었을 그가 군부독재 정권의 막내라 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어떤 시대를 맞았을 때 정치지도자의 선택과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기 위해 들었을 예일 것이다.

노태우는 취임 이후 정치인에 대한 풍자의 자유를 허용하였으며, 1988년 7월 7일 '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하고 이어서 중국,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의 외교 정책을 추진했다. 국내외 외교환경 변화의 덕택이라는 평가절하도 있지만, 군부독재 시절의 통치자, 그것도 군인 출신의 대통령이 그 방향을 선택했다는 것은 옳게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뿐만 아니라 1991년에는 대선 공약이었던 중간평가를 협상 매개로 삼아 야당과 시민단체의 지방자치제 부활을 수용했다. 또한,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도 강행하는 등 우리 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적지 않다. 대선 때의 슬로건인 ‘보통사람’과 인구에 회자한 ‘물태우’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는 행적이다. 물론 퇴임 후 감옥살이도 했다.

요즘 인기리에 상영 중인 영화 "1987년"으로 젊은이들까지 익히 알게 된 6월 항쟁은 6·29 선언으로 말미암아 시민의 승리로 마무리되는데 이 선언을 한 사람이 노태우다. 선언의 요체는 간접선거 방식인 5공화국 헌법을 지금의 5년 임기 직선 대통령제로 바꾸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를 두고 누가 주도했는지 말도 많지만, 여하간 선언을 한 사람은 노태우였고 바뀐 헌법 체제에서 쟁쟁한 3김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한다. 그로 말미암아 시작된 것이 1노 3김, 여소야대 정국이었는데, 이는 나중에 내각제 약속을 조건으로 3당 합당으로 이어진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이 이루어질 듯하다. 정치라는 게 하루 앞을 알 수 없지만, 당명까지 나온 마당에서 헛수고가 될 것 같지는 않은 가운데 합당에 반대하는 국민의당 일부는 민주평화당을 창당한다고 하고, 바른정당의 정치인 중 일부는 자유한국당으로 회귀했다. 그렇지만 ‘미래당’은 원내 3당 위치를 차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는 상황인데, 민주평화당이 20석을 넘겨 교섭단체가 되면 4당 체제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시작부터 여소야대 상황이었으니 4당 체제와 여소야대 정국은 형식상 그때와 비슷하다. 여차하면 1당 지위도 불안할 정도이다.

이런 전조는 사실 대선 전부터 보였다. 어떤 글에서 나는 보수 정치세력, 아니 지금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이루고 있는 정치세력이 유승민 의원을 단독 후보로 밀어붙이면 당시 야권은 19대 대선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것이라고 쓴 적이 있는데, 탄핵 사태와 맞물려 대선이 조기에 치러지는 상황을 맞았다. 후보도 못 낼 것 같았던 새누리당은 홍준표 후보를 내세웠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유승민 의원도 후보로 나선 상황에서 문재인, 안철수, 심상정, 이렇게 다섯 후보가 대선을 치렀다. 결과는 문재인 후보의 승리였지만 대선 내내 변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정이지만 안철수 후보가 없었다면 홍준표, 유승민 후보의 단일화는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 선거는 새로운 양상으로 흘렀을 것이 뻔하다. 집권 가능성이 보이면 이를 추진했을 것이고 단일 후보로 홍준표 후보가 아닌 유승민 의원이 나서게 되었을 경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3명의 후보 중에서 한 사람만 조기에 포기했더라도 결과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게 분명하다. 2명만 남은 후보들이 단일화 논의를 안 할 리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전 18대 대선에서도 안철수 대표의 공은 작지 않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정국에서 처음으로 정치 행위를 시작한 안철수 대표는 오늘날 박원순 서울시장 시대를 열어준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이후의 안철수 열풍과 문재인 후보로의 단일화가 없었다면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그만큼의 성적을 올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어떤 자리에 앉느냐를 두고 정치인을 평가하거나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에 비교해 호불호를 나타내곤 하는데 냉정한 시각으로 보면 안철수 대표가 최근 우리 정치에 끼친 영향력은 정치경력과 비교하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고,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세월이 사람을 변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안철수 대표를 보고 있자면 이젠 정말 정치인이라고 해도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좌고우면 식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 독재라는 말까지 국민의당 내부에서 나도는 상황이고, 탈당도 하지 않은 가운데 신당 창당 작업을 하는 상황을 맞아서도 별로 흔들리는 기색이 없다.

서울시장 불출마 선언으로 시작한 정치적 활동이니 길어봐야 6년 정도이고, 보궐선거로 당선한 19대 국회의원, 대선후보로 나서면서 사퇴한 20대 국회의원 재임 기간은 약 4년에 불과해서일까, 흔히 안 대표를 두고 초딩 운운하는 우스갯소리도 난무하는데, 말처럼 초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4년여 의원 경력이 전부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하는 고참 의원들은 그럼 뭐냐는 말이 나옴 직하다는 뜻이다.

여론조사는 그냥 하는 것일 뿐 믿을 수 없고, 결국 정치는 선거에서 진정한 민의를 확인하게 된다. 기성 정치인 중 누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약진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했을까? 전제국가에서의 제왕도 못 이기는 게 민심인데 우리 정치권은 엘리트 의식에 빠져 정치권 내부의 논리와 판단에 너무 매몰되었다는 자성이 필요한 것 같다.

누가 무엇이 되느냐는 것보다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관조하지 못하는 정치, 최소한의 정치공학적 계산도 못 해, 정치적 상대를 적으로 돌리기만 하는 정치를 하면서 어떻게 더욱 복잡한 민심을 헤아리겠느냐는 의심은 합당한 의심이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한반도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여야는 정쟁이 아니라 몇 날 며칠 밤을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야 하고 합의를 통해 일치된 목소리를 대외적으로 내야 할 상황이다. 그 첫 번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여당에 있다. 변화의 시대에 올바른 선택을 한다는 것은 중요함을 넘어 생존의 문제이다.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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