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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위원회를 없애라평균임금에 대비한 최저임금을 법률로 규정해야!

2010년 1월 27일 샌프란시스코의 ‘야르바부에나 아트 센터’에서 애플의 아이패드가 공개된다. 가격은 16GB 기본 모델이 499달러다. 언론들은 놀라운 가격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저렴하다고 평가했다. 그전에 없던 신종 제품인데 어떤 기준이 있었기에 저렴하다고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스티브잡스의 제품 설명회 화면 캡쳐

이에 대한 해답은 다름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의 설명회 진행 과정에 숨어있다. 잡스는 당시 발표 프레젠테이션에 999달러라는 가격을 표시하면서 “전문가들이 적정가격으로 999달러라고 말하더라.”는 일화를 먼저 소개하고 한참 후에 499달러 가격을 공개한다. 설명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단돈 499달러다. 환율을 1,100원으로 치면 55만 원에 이르는 가격이다.

행동경제학의 용어 중에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라는 게 있다. 처음 언급된 조건에 얽매여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효과를 말한다. 부동산 거래에서 처음 부르는 가격을 따로 하고 전문가들에게 적정가격을 내놓으라고 하면 똑같은 부동산인데도 가격을 달리 내놓는다는 실험 결과가 있을 정도로 인간은 선입관, 군중심리, 확증편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다.

최저임금도 이와 똑같은 효과가 있다. 하나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안 지키면 벌을 받는 엄격한 기준이다. 그러므로 이 기준은 최저선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흥정이나 협상의 과정에서 최저선의 기준이 된다. 앵커(닻, Anchor) 역할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당연히 노동 현장에서는 그보다 많은 금액에서 임금 수준이 정해진다.

인간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공정하게 또는 공평하게 치르는 것은 중요한, 아니 절대적이라 해야 마땅한 가치다. 노예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노동환경에 따라서 또는 노동자의 생산성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게 정당한 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해마다 최저임금을 정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항상 문제도 많고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경제라는 게 항상 상대방이 존재하기 때문에 임금이란 받는 사람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주는 사람이 있고, 이는 결국 물가와 연동된다.

최저임금, 중위임금, 평균임금 추이

임금 기준에는 최저임금만 있는 게 아니고 평균임금이라는 게 있고 중위임금이라는 것도 있다. 평균임금은 총임금액을 노동자의 수로 나눈 것이고, 중위임금은 노동자 전체를 받는 임금의 순서대로 일렬로 세운 후 딱 중간에 있는 사람이 받는 임금이다. 언뜻 생각하면 이게 똑같거나 비슷해야 할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상당히 차이가 크다. 표에도 있듯이 2017년 평균임금은 14,765원인 데에 반해 중위임금은 11,512원이다. 무려 3,253원이나 차이가 난다. 하루 여덟 시간 노동으로 치면 26,024원이고 30일이면 780,720원 차이가 난다. 최저임금은 대략 평균임금이 아닌 중위임금의 절반 정도에 머물고 있다.

자료를 가만히 보면 평균임금과 중위임금의 차이가 해마다 점차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해석하면 노동자 전체가 받는 임금은 상승하고 있는데 중위임금 이하 다수 노동자의 임금은 그 임금 상승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누군가 더 많이 가져간다는 뜻이다. 가난한 것보다 억울한 게 더 화가 난다고 하듯이 우리 사회에 팽배한 갈등 요인은 사용자와 노동자 간에도 있지만, 같은 노동자 안에서도 차별적 요소가 있기에 생겨난다는 것을 이 자료만 봐도 알 수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해마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면 시끄럽다. 당연한 일이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데 어느 쪽 목소리가 크고 정당성이 있는지에 따라 기준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 언급했듯이 최저임금을 아무리 올려도 노동자 간의 불균형은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 아니, 불균형이 더욱 심해졌다.

최저임금위원회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들의 이해관계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용자 측이 더 내라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협상에서의 기준이 중위임금에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이렇게 결정된 금액이 이후에는 앵커 역할을 한다. 일파만파의 영향은 멀리 갈수록 커지는 법이다.

그럼 이 기준을 바꿔야 한다. 평균임금이 협상의 기준이 되면 효과가 전혀 달라진다. 전체 노동자의 평균임금에 비례해 최저임금을 산정하면 엄청난 상승효과가 있는데 노동자 측이 왜 이걸 마다하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사용자 측이 줄 수 있는 한계가 있어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산정하면 대폭적인 상승이 불가능하다는 데에 있다. 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다. 많이 받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면 된다. 누가 봐도 이게 상식적이다.

해답은 너무나 간단한 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 중에 좋은 방안이 이미 나와 있다. 2017년 1월 25일 정동영 의원이 제출한 법안을 보면 최저임금 하한선을 아예 법으로 규정하자는 내용이다. 평균임금의 50%로 정해 법률로 정하자는 취지인데 이렇게 하면 최저임금위원회를 아예 없애도 된다. 해마다 시끄러울 일도 없다. 예를 들어 전년도 평균임금의 50%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는 정도로 법률에 규정하면 단위사업장마다 임금 협상은 할지언정 온 나라가 최저임금 협상에 관심을 기울일 이유가 사라진다.

최저임금은 법률로 강제되어 있고, 줄 수 있는 임금 총액은 한계가 있는데 그런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임금 협상은 아무래도 지금보다 균형을 유지할 가능성이 커진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무조건 올려달라고만 하는 몰상식이라면 모를까, 임금 총액에서 최저선을 일단 지키고 남은 것으로 나눠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논란도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테이블에 놓이는 물도 돈이 들어간다. 경제적으로 살자!

 

박정원 편집위원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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