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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이 옆에 있어도 모르는 나라증오, 고백, 용서, 사랑, 신뢰의 단순 연산
  • 박정원 기자/편집장
  • 승인 2019.05.2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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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현대사를 보면 국가가 개인에게 저지른 참혹한 일이 많았다. 군인, 경찰, 법원, 어떤 경우는 관변단체와 심지어 깡패까지 동원해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폭행하고 가둔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래도 아직 국가가 유지되는 것 보면 그 자체가 신기할 정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불법과 인권을 훼손하는 행위에 항거할 권리가 있는 게 보편적 철학이니 이런 범죄에는 똑같이 무력을 사용해 방어해도 된다는 게 바로 정당방위 개념인데 역사상 그런 일도 별로 없었으니 보복은 꿈도 꾸지 않는 듯하다.

미국 영화 "허리케인 카터"는 실존 인물인 '루빈 카터'의 이야기다. 유명한 권투 선수였던 그는 1966년에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시작해 연방대법원의 무죄 확정으로 1988년 최종적으로 풀려났다. 당시 미국 사회가 얼마나 그의 억울함을 잘 알고 있었든지 '밥 딜런'마저 1975년에 카터의 삶을 노래한 "Hurricane"을 발표했다.

이뿐만 아니라 미국 흑인 역사를 다른 수많은 영화를 보면 인종 차별로 피해를 본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없이 많다. 피부색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아직도 인종 차별이 꽤나 존재하는 게 미국 사회이지만, 그래도 흑인이 대통령도 되는 세상이 된 게 오늘날 미국이다.

영화 "허리케인 카터"를 보면 "증오가 나를 감옥에 가두더니, 사랑이 날 풀어주는구나."라는 주인공의 대사가 나온다. 그는 어려서부터 차별받는 흑인으로서 증오를 주먹에 실어 권투 선수로서 성공한 인물이다. 스포츠가 아니라 그에게 권투는 증오의 발산이었다. 그런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에 힘입어 자유를 얻게 되었으니, 이보다 적절한 표현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른바 단일민족이라 그러기도 하고, 외모만 봐서는 어떤 차별도 하기 어렵다. 그런데 과연 차별이 없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하기가 쉽지 않다. 혈통 중심 사회이기도 하거니와 지역, 학연 등 인연 따라 차별이 존재하고 부의 많고 적음, 학력, 직업 등등을 따져 온갖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한국은 카스트 제도가 있는 나라라는 표현까지 했다.

따지고 보면 이는 차별이 아니라 서열화일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는 유독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고 1등을 선호한다. 좋다. 그게 현실이고 차별이든 서열화든 한순간에 해결할 수도 없고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 유독 드러나는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저지른 자의 고백이나 반성이 없다는 점이다. 누가 사살 명령을 했든 결국 누군가는 총을 쐈으니 사람이 죽었을 텐데 정작 총을 쏜 사람 중 누구 한 명이라도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반성은커녕 고백이라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국가와 집단의 뒤에 숨은 개인의 비양심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미개한 국민에 불과하다.

생각해보면 이 나라의 국민은 증오마저도 제대로 토해내지 못했기에 용서도 사랑도 아직 제대로 모르는 게 분명하다. 그러므로 추론컨대 비인간적인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증오 범죄가 이제부터 제대로 나타날 것 같다.

이 또한 우리가 거쳐야 할 문명의 단계라면 어찌할 도리는 없을 텐데 고작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나라인 미국은 이민자들의 이질적 갈등이 존재했기에 그나마 대책을 빨리 구축했을 수 있지만, 우리는 외견상 구분키 어려운 동질적 구조가 단단해서 더욱 오랜 시간이 필요하거나 영원히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비열한 누군가가 바로 옆에 있어도 알아채지 못하는 구조는 개혁되어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율이 안 되면 타율이라도 동원해야 그나마 이런 야만적 구조를 바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공무원이 기록을 없애고 감추는 나라,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과거의 흔적을 감출 수 있는 나라, 어떻게 벌어도 부자라면 모든 게 통하는 나라에서 신뢰, 용서, 사랑 등의 표현은 허망할 뿐이다. 영화 대사도 아니고.
 

박정원 기자/편집장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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