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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선택형 문제가 아니다없는 혼돈도 일부러 만드는 게 정부의 책임 
  • 박정원 기자/편집장
  • 승인 2019.07.10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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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반도체, 인공지능, 빅데이터, IoT, 바이오, 자율자동차, 재생에너지, 수소연료전지… 등등, 앞으로 우리 경제가 집중해야 할 분야라고 거론되는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했는데 많기도 많다.

그런데 이 중에 한국에서 최초로 내놓은 게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리가 개념 차원이라도 최초로 제시한 건 하나도 없으니 이는 결국 선진국이 내놓은 답안 중에서 무엇에 투자하고 미래 먹거리를 찾을까 고민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문 대통령이 경제과학 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는 서울대 이정동 교수의 책을 보면 ‘개념 설계’와 ‘스케일업’에 대해 아주 쉽게 설명이 되어 있는데 보좌를 제대로 못 하는지 모르겠고 개념 설계 등의 표현도 따지고 보면 한계가 있으므로 굳이 그의 조언을 따르라고 할 일은 아니지만, 언제나 보면 역대 정부든 지금 정부든 우리 정부가 내놓는 경제정책들에는 인문학적 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

경제는 사실 인문학과 가까워야 한다. 인문학적 필요가 존재하지 않는 기술은 시장 수요 측면에선 의미가 전혀 없는바, 인간이 왜 사는가에 대한 지속적 성찰로서의 인문학이 발전해야 새로운 개념도 나오고 경제적 성장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혼돈이 먼저 존재한다. 초기 조건에 매우 민감하여 미래의 상태를 실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양상을 혼돈이라고 정의한다면, 질서가 완벽히 지켜지는 상황에서는 특별한 일이 절대 일어날 수 없으므로 특별한 무엇들이 생겨나는 조건은 혼돈이라고 할 수 있다.

산소와 수소가 만나 물이 되었다고 그게 없던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원래부터 세상에 없던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특별한 것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것일지라도 결국 있는 것들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은 과학적 진리인데 어떤 조건을 거쳐 새로운 형태와 성질을 띠게 되는 과정에는 대개 혼돈의 과정이 존재한다.

사람 사는 세상도 똑같다. 소수의 누군가가 이걸 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를 다수의 사람이 따르는 구조에서는 혼돈이 생겨나기 어렵다. 소수들이 원하는 공부가 강요되고 필요한 기술자를 육성하는 교육이 횡행하는 한, 우리 교육은 언제나 객관식 또는 선택형 답안지를 채우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주관식 시험도 정답이 분명한 답만을 원하는 교육 현실이니 두말하면 입만 아플 뿐이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토양과 기후 등 자연환경이 농사에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적절한 품종을 선택해 제대로 키웠다 해도 꼭 성공하란 법은 없다. 양파와 마늘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라는 뉴스에서 보듯이 시장의 수요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풍작은 사실 재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재해도 정부가 보상해주고 풍작도 정부가 보상해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 예와 비교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토양과 기후 등 자연조건을 최대한 좋게 만드는 건 개인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정부 몫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심고 가꾸라 강제한다는 건 선택식일 테지만 자유롭게 놓아두었을 때 5천만 국민이 무엇을 가꿀지 그로 말미암아 무엇이 나올지 예측하는 건 쉽지 않다. 당장 먹을 것이 급한 상황만 만들지 않으면 인간이란 존재는 워낙 다양해서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농부가 당장 배가 고프지 않도록 하는 일도 정부 몫이다.

수확기에 이르러 시장 수요에 맞지 않는 일도 발생할 수 있고 때로는 전혀 예기치 않게 큰 수익을 낼 수도 있는 게 농사인데 그렇다면 실패한 농부가 농사를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 일 또한 정부 몫이라 할 수 있는바, 반대로 큰 수익을 낸 농부에게 적절히 과세해 이 재원을 마련하는 것 또한 정부의 책임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부가 할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기초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창의력을 발휘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나아가 실패한 자와 성공한 자가 너무 차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조정해주는 게 할 일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콩을 심어야 한다는 둥 팥을 심어야 한다는 둥 오지랖을 떨면서 하지 않아도 될 참견을 하니 배가 산으로 간다. 5천만 국민이 코흘리개 어린이도 아니고 매사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해야 할 정도로 보이는지 모르겠는데 이는 마치 조선 시대 사대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커서 무엇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로 키우는 게 부모의 도리이듯이 가르치려 들지 않는 자세로 복무하는 건 공직의 기본자세라 할 수 있고, 없는 혼돈도 일부러 만들어 예기치 않은 것들이 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정부의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는 간단한 말을 예기치 않게 길게 썼다.

 

박정원 기자/편집장  pjw@pressby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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