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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 등 친일 인사, 역대 성균관대 총장으로 인정프레스바이플이 만난 사람 ⑧ - 류승완 박사 2편

 

아래 내용은 성균관대 시간강사로 강단에 섰다가 시간 배정을 받지 못한 후 1년내내 1인시위를 하고 있는 류승완 박사와의 인터뷰 중, 성균관대 본관 내부에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별도 촬영을 한 부분입니다. 인터뷰는 27일에 실을 예정입니다. <편집자>

 

[안내 전문]

이것이 삼성이 들어오고 나서 설치한 구조물이다. 그전에 있던 것이 아니다. 여기에 보면 역대 총장들의 이름을 만들어 붙여서 그들의 위상을 높여 주고 있다. 저쪽에 있는 구조물에는 이건희 씨 등 돈 낸 사람들의 이름이 있다.

실제로 성균관은 1910년 나라를 빼앗기면서 역사가 단절된 것이다. 단절되었으니 그 시기에는 총장도 아니었다. 일본강점기 때에는 성균관이 아닌 <경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경학원 원장으로서의 이완용의 이름이 여기 적혀 있다. 여기에 보면 이완용, 그 앞에 있던 사람은 박제순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술국치 과정에서 문서에 자기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는 대표적인 친일파들이 아닌가?

물론 박제순과 이완용이 이 옆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눈에 잘 띄니까 잘 안 보이게 하려고, 이 중간에 살짝 끼워 넣은 것이다. 이완용, 박제순, 이선근과 같은 사람들은 학계에서는 친일파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친일인명사전에도 교육계 대표적인 친일인물로 나온다. 이들을 올려놓은 것과 관련해 가장 분개하고 있는 것은 심산 김창숙, 이 분이 심산 선생이다. 심산 선생은 나라를 되찾으려고 중국으로 건너가 싸우던 분이다. 이 분과 일제에 붙어서 협력한 인간들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일제 당시에는 경학원이었다. 일제가 1910년 나라를 접수했지 않나! 경성제국대학이 1925년 개교했다. 그렇다면 그 사이 15년간 이곳은 우리나라의 최고 교육기관이었다. 조선 총독이 직접 관리할 정도로. 이 경학원 원장은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이 겸임하고, 나머지 조선인 친일파들이 유지했다. 현재 유림은 형식만 남았지만, 당시에는 사회를 움직이는 실세들이었다. 농업사회니까. 그런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포섭해서 일제의 통치를 이어갔다. 당시 기독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겠나?

이들이 주류고, 이 사람들이 신사참배도 하고, 일본식 성명 강요도 하고, 일본군 강제위안부도 나가라고 하고, 남학생들에게는 자살결사대 나가라고 하는 등의 논리를 개발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 성균관대학교 본관 (600주년 기념관). 류승완 박사는 이 건물의 정문 앞에서 1년 째 억울하게 박탈된 강의를 되찾기 위해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실제 성균관의 전통은 단재 신채호, 박은식, 김창숙, 이렇게 보는 것이 맞다. 그분들은 일제가 들어오니까 물러나거나 스스로 사직하거나 쫓겨나거나 해서 중국으로 망명해 있던 상태였다. 그 인간들이 어떻게 똑같은 총장이 되는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그 친일행위를 희석하기 위해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 학교의 주장은 역대 총장이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경학원 원장은 했을지언정 성균관 총장을 한 적은 없다. 그런 논리라면 조선 총독과 일본 천황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묻혀야 한다. 그렇지 않나?

경학원의 역사는 성균관의 역사라고 볼 수 없나?

그렇다. 그들이 친일한 행각을 보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할 정도로 실로 깜짝 놀랄 정도다. 학생들에게 임금에게 목숨을 바치는 것이 충성이다. 일본군 강제위안부 나라가. 자신의 자녀는 안 내보내면서….

그 다음엔 일선동조론, 일본인과 조선인은 조상이 같는 논리다. 일선동조론은 일본인 학자들이 처음 내세워 조선 침략을 뒷받침하는 학술적 근거가 되었다. 이후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유럽과 같은 수준으로 생각하면서 조선인 학자들에게 일선동조론에 대한 논문을 쓰게 했다.  

조선인 어용학자들을 동원해서, 조상이 같으니까, 일본식 이름으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나라에 충성해야 하니까 우리나라 임금은 천황 폐하니까 가서 목숨을 바쳐야 한다고 설교했다.

이들이 가르친 것 중 하나는 '신라의 화랑 관창"이었는데, 뭐라고 가르쳤느냐면, "신라 무사도 정신"이라고 가르쳤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예전부터 할아버지도 같고, 정신도 같다. 그래서 13살 자리도 백제와의 전쟁에 나가서 저렇게 목숨을 바쳤다. 너희는 이제 19살~20살이 되었으니 나가서 죽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이다. 저 인간들이 그렇게 가르쳤다. 이런 자들과 단재 선생이 같다고 이렇게 해 놓은 것에 분노한다. 저쪽에는 돈을 많이 낸 이건희 이렇게 해 놓고…….

저것이 예전부터 있었던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면, 그 자체의 역사다. 부끄러운 역사지만, 있었던 사실이니까 그냥 둘 수 있다. 그러나 저 구조물은 삼성이 들어오면서 설치한 것이다. 저것은 역사적인 비석도 아니다. 왜 저렇게 해 놨겠는가?

더군다나 저 친일파 인사들을 심산 선생과 같은 레벨로 해 놓았지 않나? 잘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이 내용을 주입하여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한 것이 다 어떻게 학생들에게…. 출세하면 용서된다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할 수 있나?

문제 제기는 없었나?

   
▲ 본관에서 바라본 성균관대학교 전경, 학생회관 위편 붉은 벽돌 건물이 호암관이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렇게 거짓말을 했다. 만들 때 논란이 많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순 거짓말이다. 논란이 하나도 없었다. 2000년 출교 사태 이후 학내에 겁을 주어 여론을 왜곡하고, 별일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 목적으로 저것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성균관대학교는 역대 600년 동안 이어졌다고 말이다. 일제와 맞서 총을 들고 싸운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은가, 이완용과 김창숙이 같은가? 저들은 같다고 한다. 저들은 심산 선생을 이용해서 친일파들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하는 것이다.

성균관대학교는 문화유산이 있는 것을 강조한다. 이곳에 올라오다 보면 비천당이 있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데, 그곳은 조선 시대 과거시험장이다. 드라마에 나오는 경복궁이 아니다. 옛날 사진을 보면 저렇게 높지가 않다. 주차장 만든다고 콘크리트 시공해서 원형을 완전히 박살을 냈다. 콘크리트 시공을 해서 옆 지면보다 1미터 정도 높아졌다. 옛날 건물에 남아 있는 사진과 비교하면, 복원하면서고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어서 현재 주차장으로 쓰는 처지다, 다 망가트려 놓았다. 조선 시대 과거시험장이라면 중요한 역사적 유적 아닌가? 그 원형을 다 훼손했다.

저기 심산관을 호암관으로 슬쩍 리모델링 하면서 바꿔 달아놓고….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이지, 그들은 심산관이었던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경직 기자  mp9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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