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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기업화와 학문의 죽음내 인생의 명저 < 대학의 몰락>
  • 신승환 가톨릭대 교수(철학)
  • 승인 2012.09.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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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가 민교협 홈페이지에 싣는 '내 인생의 명저' 칼럼을 <프레스바이플>도 함께 소개한다. 편집자

인문학의 위기란 말은 진부하다 못해 이제는 지겹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 말에 담긴 진정한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은 것 같지 않다. 겨우 '최고 CEO 인문학 강좌' 따위를 개최하여 한 줌의 인문학적 지식으로 자본주의 논리에 종사하거나, 자신들의 학문 분야에 미칠 득실 계산에 눈 밝은 이들만이 보이는 것은 의혹에 찬 편협한 생각일까. 철학에서도 종말 담론은 지난 세기 말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문제의 진정한 원인과 본질적 해결은 보이지 않지만, 자본이 제공하는 틈새에 기생해 겨우 연명하는 것이 인문학 일반의 현실인 것 같다. 이런 와중에 학문의 터전이라 불리던 대학은 서서히 기업화되고, 자본주의 물결에 휩쓸려 온갖 아름다운 명분으로 개혁과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지겨운 인문학 위기 논의

자본주의란 이름의 경제적 삶의 양태가 그 자체로 무슨 문제일까. 복지를 전면에 내세우건, 경제민주화를 통한 개혁이건, 또는 낙수 효과에 기대어 살든 사람의 경제적 삶은 여전히 이어질 테고, 이를 통한 인간의 욕망은 결코 사라지지도, 충족되지도 않을 테니 그렇게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럼에도, 학문을 통한 진리 탐구, 올바른 지식과 타당한 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조차 그런 삶에 파묻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내 인생의 명저>를 소개하는 글이지만 내 존재를 근본에서부터 변화시킨 이른바 '명저'는 딱히 떠오르지 않으니,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대학의 종말에 대해 경고한 몇 권의 책을 소개해보련다. 학적 지식과 진리가 여전히 유효한 말이라면 학문하는 자리에 대해 되돌아보는 일이 의미 없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대학이 처한 사정은 무엇보다 먼저 서보명의 저서(「대학의 몰락」, 동연 2011)를 통해 잘 살펴볼 수 있다. 미국 시카고 신학대학 교수인 저자는 방문교수로 내한하여 한국의 대학을 접하게 된다. 이때는 IMF 구제금융 시대를 극복하면서 우리 사회 전체가 경쟁과 성장이란 신화에 함몰되고, 경제란 패러다임으로 세계를 이해하게 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는 현재의 대학은 학문과 제도를 "기업자본주의의 생산과 판매의 모델로 이해"(「대학의 몰락」, 9쪽)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럴 때 대학은 본연의 모습으로 존립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의 대학은 "신자유주의의 공격과 입시제도를 둘러싼 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의 대학이 다만 제도로서만 존재했지 한국의 문화와 철학의 이념을 올바르게 발전시키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주의의 등장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한 모든 학문과 종교는 찬란한 실패를 맛보고 있다(「대학의 몰락」, 11쪽). 이에 맞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말하는 모든 체계, 종교와 대학은 현대 세계의 위기를 넘어설 지식의 새로운 형상과 이를 위한 공동체를 창출해 내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대학의 위기와 철학의 죽음을 넘어 인간과 존재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대학

이 시대 미국의 대학이 처한 현실을 수많은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 책 가운데 제니퍼 워시번의 「대학 주식회사」(후마니타스 2011)는 우리 대학의 현실에 비추어 많은 문제를 생각하게 한다. 후기 산업사회를 사는 오늘날 서구의 근대성(modernity)은 자본과 과학이란 이름으로 과잉으로 치닫고 있다. 그에 따라 대학 역시 이 두 명제를 토대로 변화되고 있다. 그 실상은 피닉스 대학의 설립자가 한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학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기업이다. 우리는 [학생들의]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정신세계를 넓혀 주는' 따위의 일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 주식회사」, 11쪽). 이 책에서 언급하는 산업 및 기업과 결합한 과학·기술 및 공학 계열의 대학 문제는 미국 대학의 환경과 특성을 반영하고 있어 한국에서는 아직은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학문과 대학, 교육공학적 측면 모두에서 미국을 열렬히 추종하는 우리의 현실을 볼 때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교육정책을 살펴보면 조만간 이런 경향이 현실화될 것이 분명해지는 만큼 우리 대학의 미래를 위해서는 꼭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대학의 일차적 사명이 기업의 단기적인 이해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 잡힌 시민을 양성하고 공적인 가치가 있는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다는 믿음을 위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대학 교육의 중요한 가치와 학문의 자유, 전인교육이란 이상이 가능한 것은 "외부의 힘이 그 가치를 위협할 때 그에 맞서 저항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대학 주식회사」, 63쪽)이다. 그래서 저자는 4~6장에 걸쳐 기업화된 대학의 실상과 자본에 종속된 과학 연구를 비판한 뒤 그럼에도 대학이 학문의 원칙과 자율성을 희생하지 않고서도 "과학과 기술혁신에 크게 이바지하고, 기업과는 생산적인 협력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는" (「대학 주식회사」, 340쪽) 방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오늘날 대학에 대해 말하는 논조는 대학의 시장화와 자본주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논리를 자명하게 전제하고 있다. 교육과정을 수요자인 기업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교육부를 비롯한 정책 집단의 일면적 이해는 물론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대학 경영자들의 일반적 생각은 결국 '시장'의 입장에서 대학과 교육을 한계 지우는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대학은 경쟁을 통해 성장해야 하며, 그 지표는 이해 집단에 지나지 않는 언론의 평가지수다. 그러는 사이 자본에 의해 묻히는 인간성이나 비인간화는 물론, 사회적 양극화와 모순이 심화하고 있지 않은가.

   
▲ 서보명,「대학의 몰락」, 동연 2011

이런 현실에 대해 학문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으며, 대학 본연의 진리 주장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대학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이바지하는 것이 학문의 진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그 쓰임새에 제한될 때 대학은 종말을 맞는다. 대학은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고, 저급한 성장 놀음에 굴종함으로써 스스로 기업과 정책의 하부 기관으로 전락하였다. 대학에 학문과 교육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 교육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이해하고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달성하는 데 있지, 기업의 개별적 요구나 삶의 수단을 충족시키는 데 있지 않다. 대학은 그가 속한 공동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말하는 데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지, 집단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자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이념

이런 가운데 인문학적 진리를 탐구하는 대학 본연의 이념에 대해 설파한 글이 있다. K. 야스퍼스는 야만과 폭력의 시대가 지나가고 새롭게 인간성을 사유해야 할 시기에 대학의 이념에 대해 사유한다.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학지사 1997)에서 그는 대학의 존립 근거인 학문과 지적 삶에 대해 사유한 뒤(1부), 이를 바탕으로 하여 대학의 과제(2부)와 대학의 존립을 위한 필요조건(3부)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고 있다. 대학은 "학자와 학생들이 공동체를 이루고 진리를 터득하는" 중요한 과제를 지닌다. 대학은 독립된 자치단체로서 '가르침의 자유를 요구'한다.

그 자유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조건'이며, 국가와 그 외 정치적 힘에서 주어지는 내외적 간섭을 넘어선다는 의미의 자유다(17쪽). 대학의 목적은 '근원적인 지적 욕구'이자 '우리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며, 그 앎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 발견하는 데 있다(19쪽). 그와 함께 대학은 “그 사회와 국가가 필요로 하는 그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 의식을 형성”한다. 대학은 일차적으로 학문과 진리를 위한 공동체이면서 국가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의미를 제시하는 집단이다.

대학은 '학문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며, 이차적으로 이러한 진리를 전수하는 행위, 교육이란 과제를 지닌다. 그것은 결코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을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는 훨씬 심오한 인간의 정신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대학의 이념은 우리가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하나의 이상을 향해 나아감을 의미"한다(20쪽). 야스퍼스의 대학 이념은 지극히 원론적이며 2~3부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독일적 특성에 따른 것이기에 지금 우리의 현실과 들어맞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대학의 기업화가 당연한 시대의 논리인양 강조되는 과잉 자본주의 시대에 대학의 이념에 대해 그 본질에서부터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대학인의 대응과 학문

지금 대학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변화된 시대와 학문, 지식의 모습을 진지하게 수용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하여 학문과 교육이, 그리고 지식이 지니는 의미를 사유하는 것이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이해의 변화에 따라 대학의 임무와 역할 역시 불가피하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떠한 경우라도 진리와 존재를 위한 학문과 교육을 지키기 위한 변화여야 한다. 대학의 변화는 지나간 역사에서의 실패를 바탕으로 하여 대학이 나아가야 할 길, 대학의 이념에 대해 사유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맹목적인 자본의 논리와 생각 없는 교육공학적 정책의 틀을 넘어 변화된 학문과 시대 안에서 대학 본연의 사명과 과제를 새롭게 드러내어야 한다. 그것은 존재와 인간, 자연과 세계의 의미를 사유하는 학문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살아나고 이를 통해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학적 작업을 의미한다. 그를 위한 올바름을 말하지 못하고, 그를 위한 과제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대학과 학문, 대학인의 존립 근거는 어디에서도 정당하게 자리할 수 없을 것이다.

대학 교육의 중요한 가치가 지켜지고, 학문의 자유와 전인교육이란 이상이 지금까지도 존재하는 것은 “외부의 힘이 그 가치를 위협할 때에 그에 맞서 저항의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대학 주식회사」, 340쪽)이다. 그러기에 "대학교육이 시장에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달렸음"(「대학 주식회사」, 26쪽)을 자각하여, 외부의 필요가 아니라 대학과 학문 본연의 가치와 목적을 지키기 위한 사유와 학적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작업을 수행하지 못할 때 대학 주식회사와 함께 학문은 '마트에서 바겐세일'로 팔리는 지식, 인터넷 공간에 흩날리는 파편화된 지식이 될 것이다. 그럴 때 학자가 자리할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신승환 교수는 독일 Univ. Regensburg에서 논문 “Metaphysik-Kunst-Postmoderne: Martin Heideggers Rationalitae tskritik und das Problem der Wahrheit"으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Metaphisik-Kunst-Postmoderne>, <하이데거철학의 근본문제>, <한국가톨릭 어디로 갈 것인가>, <인간학>, <니체가 뒤흔든 철학100년>,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 등이 있고, 역서로는 <시간과 신화>, <환경위기의 철학>, <삶과 죽음>이 있다.

대학의 몰락」, 동연 2011
K. 야스퍼스, 「칼 야스퍼스의 대학의 이념」, 이수동 옮김, 학지사 1997
J. 워시번, 「대학 주식회사」, 김주연 옮김, 후마니타스 2011

신승환 가톨릭대 교수(철학)  sehanul@catholic.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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